조영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의 고등학생 시절 급훈은 日日新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정하시고, 서예반 활동을 하던 학생이 써서 교실 칠판 위에 걸어 두었다. 잘 쓴 글씨였으나 왠지 날 일()’자가 좀 납작해서 가로 왈()’자로도 보였다. 때문에 수업을 들어오시는 다른 선생님들이 이 반 급훈에서는 강아지 소리가 나는구먼하고 놀리시던 기억이 난다. 알다시피 이는 대학(大學)에 나오는 日日新 又日新(일일신 우일신)’을 줄인 말로서, ‘매일 매일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야 한다는 경구(警句).

  늘 보면서도 무심히 지나쳤던 이 글귀는 세월이 갈수록 점점 깊은 울림을 준다. 이것은 매우 실존적인 생각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여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일매일 늙어간다. 죽음에 한발씩 가까워진다는 의미이다. 이건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한 가지 특권이 있다. ‘육체의 쇠퇴와 달리 우리의 정신은 나날이 새롭게 갱신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지 어제보다 오늘 더 좋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을 수 있고, 그것을 점검할 수 있고, 실패를 반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이건 쉬운 일은 아니다.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좋은 사람이 되려는 진지한 결심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이는 저마다의 마음속에 있는 기준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답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저마다 어떤 모델의 좋은 사람을 떠올리든 대부분 그건 실제로도 좋은 사람이고, 어떤 터무니 없는 인간상을 좋은 사람의 모범으로 생각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본래 우리 마음속에 보편적인 선()의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칸트는 실천이성이라는 개념으로, 맹자는 사단(四端)’이라는 개념으로 이 일을 설명하지만, 요컨대 우리 마음속에 좋은 사람에 대한 동경이 본디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제로도 그런 모습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되도록 자주, 진지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한번뿐인 인생을 좋은 사람이 아닌 그저 그런 사람으로 살다가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결심을 한다 해도 그걸 이어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점검과 반성에 게을러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는 모습을 부지런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것은 옳은 일인지 단지 이로운 일인지, 옳지는 않지만 단지 이롭기 때문에 하려는 건 아닌지 부단히 자문해야 한다. 만약 그런 점검과 반성 없이 살고 있다면, 그래가면서 추구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도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 혹시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거나, 경제적 성취가 그 전부는 아닌지. 물질은 생활의 중요한 기반이므로 이를 추구하는 것은 정당하고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만약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게 관심의 전부가 되어버린다면 그건 슬프고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다. 015B수필과 자동차의 노랫말처럼 이젠 그 사람의 자동차가 무엇인지 더 궁금하고, 어느 곳에 사는지 더 중요하게 여기네. 우리가 이제 없는 건 옛 친구만은 아닐 거야라는 자조(自嘲)는 결코 먼 데 있지 않다.

  다시 일일신(日日新)으로 돌아오자. 우리는 일상에서 사람의 안색이나 태도가 표변한다는 표현을 가끔 쓴다. 지금은 나쁜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 표변(豹變)은 원래 표범이 성장하면서 가죽의 무늬가 어느 날 갑자기 기름지고 선명해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역(周易)군자는 잘못을 깨달으면 표범의 털처럼 선명하고 아름답게 선()으로 옮겨간다고 하였다. 옛글에는, 굶주리더라도 비루하게 산 아래의 먹이를 구하지 않고 안개 속에서 기다리며 털색을 바꾸어 가는 표범의 모습이 비유로 나오기도 한다(南山霧豹(남산무표)).

  하루에 한 번씩은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지,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지키고 있는지, 무엇보다 그런 내 모습을 부지런히 들여다보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만약 불만족스럽다면 툭툭 털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자.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인다면 우리는 인생의 어느 날 드디어 선명하고 빛나는 무늬를 지닌 표범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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