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난 몇 년간 일주일에 사나흘은 일기를 써왔다.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나를 사로잡고 뒤흔드는, 내가 세상을 보는 창이 되어주는 단어들을 몇 발견했다. 따뜻함, 다정함, 상냥함, 선량함이 그것이다. 온전히 내가 나로, 네가 너로 마음 편히 있도록 하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어떤 포근함을 나는 무엇보다도 강하게 열망해왔다. <쇼코의 미소>에서 펼쳐지는 세상은 사무치게 아픈 상처의 기록이면서도 그런 단어들의 총체였다.

  이 작품은 일상적 우울과 병적인 우울을 모두 아우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삶에서 벌어지는 개개의 사건들을 초월하여 감각되는 슬픔이 있고, 소설 속 인물들은 그 가운데 함께하는 관계 혹은 그 관계의 기억에 기대어 살아간다.

  표제작 <쇼코의 미소>에서 주인공 소유는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그 꿈은 번번이 좌절되고,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집어삼킨다. 또 다른 주인공 쇼코는 모두가 꽃다운 나이라 부르는 청춘의 시간들을 스스로를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어렵게 견뎌낸다. 이때 소유의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쇼코의 할아버지와 같은 다른 등장인물들도 이야기의 변두리에서 겉도는 존재가 아닌,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한다.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며 긴 세월을 건너와 사랑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해주게 된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미카엘라>에서는 세상의 무심함과 잔혹함이 드러난다. 현실의 벽은 굳건하고 견고하며, 때로 거대한 끔찍함과 참혹함이 태연하게 우리의 삶에 침입한다. 그렇지만 결국 중요한 건, “아무도 우리를 죽일 수 없다는 것. 살아남은 우리는 소용으로는 산출되지 않는 행동을 하며,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서로를 만나고 연대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박준 시인은 문학이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말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이만큼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이토록 무해하게 전하며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끌어내는 이 작품이 참 좋았다. 진정한 위로는 울음을 껴안는 울음, 슬픔을 껴안는 슬픔이고, 이 작품은 그렇게 눈물로 눈물을 씻어내 주었다.

  영주 할머니의 말씀대로 기억은 슬픈 재능이다. 그것만큼이나 슬픈 재능인 섬세함을 소설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같은 것에서도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그만큼 더 빨리 지치는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들. 그래서 안전한 곳을 찾아,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되기 쉬운 조금은 연약한 영혼들을 모두 따뜻하게 감싸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생각 많은 둘째언니님의 노래,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의 노랫말처럼, 연약함은 실은 용감함이다. 용감하게 사는 소설 속 인물들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도 조금은 더 용감해질 수 있기를, 그 용감함으로 더 꿋꿋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송하(문과대 독문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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