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속 새에게는 자유가 없다.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고, 새장 안에서 보이는 세상을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동시에 새는 자유롭다.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새는 새장으로 한정된 세상 속에서 매우 자유롭게 사는 존재이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역사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억제했던 신분제, 식민지배, 독재정권 등에 맞서 싸워왔고, 많은 노력 끝에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자유는 없다. 과거에 자유를 가로막은 것들은 눈에 잘 띄는 새장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새장 속에 살며 그 존재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은밀하게 자유를 빼앗기고 있다.

 기술 발전, 도시화, 양극화, 혐오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새장 중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은 산업혁명 이래 차원이 다르게 편리해진 생활에 대한 익숙함과 만족감이다. 현대사회는 충분히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사회이지만,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던 사람들은 점차 현재의 지속 불가능한 편리에 안주하고 있다. 한 이탈리아 코미디언은 자동차가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통념에 “80kg의 고기를 옮기기 위해서 2톤짜리 철통을 옮기는 게 위대한가?”라고 반박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고, 새장 속의 새처럼 우리만의 세상을 만끽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자유롭고 편리한 세상을 만들려 노력할수록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로울 기회를 스스로 없애게 된다. 이는 기술 발전으로 한정할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 만족하며 잃어가는 잠재된 가능성과 본질을 찾는 것이 새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박재원(문과대 언어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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