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점을 찾았다. 스마트폰에 점령당한 일상에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해서다. 우선 베스트셀러 코너로 직행해 한 권, 두 권 뒤적여 보지만 선뜻 고르지 못한다. 아무 책이나 골랐다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해버리는 낭패를 또 볼지도 모른다. 스테디셀러 코너와 신간 코너까지 기웃거린 끝에 집어 든 건 유명 작가의 얼굴이 박힌 신작. 좋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싶다. 계산을 마치고 지하철에 오르자, 생각 하나가 스친다. ‘이럴 거면 온라인으로 살 걸 그랬나? 그럼 할인도 되는데.’

 둘 중 한 사람만 책을 읽는 시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한국의 독서인구는 50.6%로 꾸준히 감소세다. 여기서 독서인구란 1년 동안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을 뜻한다. 그런 와중 온라인 서점이 도서 판매에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오프라인 서점을 찾는 사람은 나날이 줄고 있다. 이런 상황 속, ‘큐레이션을 돌파구로 찾는 서점들이 있다. 더 재밌게, 더 새롭게 책을 접하는 경험을 주는 공간으로 서점을 바꾸려는 시도다.

 

독자 중심으로 구성되는 책장

 “책에도 과잉현상이 있습니다. 매년 너무 많은 책이 출판되고 있어요.” 북큐레이션연구소 소장이자 대전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이용주 대표는 기본적으로 출판량이 많아지며 책을 분류하고 제시하는 방법인 큐레이션이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한다. 인문, 경제, 과학 등 책을 분류하는 방식은 전부터 있었지만, 다양해진 생활양식 속에서 기존의 천편일률적 책장은 이용자들에게 더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책에 흥미를 느끼고 서점을 찾도록 하려면 일상에 밀접한 키워드를 통해 큐레이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령, 요즘 상황에서는 역사라는 막연한 키워드보다 전염병의 역사가 더 와닿는 거예요.”

서점 '아크앤북'에서는 책과 관련 상품을 특정 키워드로 묶어 함께 제공하고 있다.
서점 '아크앤북'에서는 책과 관련 상품을 특정 키워드로 묶어 함께 제공하고 있다.

 올해 5호점을 연 대형서점 아크앤북은 현대인의 일상을 고려한 큐레이션을 진행한다. 지점별 주 고객층에 따라 큐레이션을 달리하는 방식이다. 오티디코퍼레이션 마케팅센터 박동진 사원은 직장인이 많은 시청점에는 퇴사자의 삶혹은 취미생활에 관한 큐레이션을 많이 진행한다이용자들의 생활 가까이 다가가 다양한 방식의 큐레이션을 시도 중이라고 전했다.

 특정 주제에서 이용자들이 연상하는 상품을 책과 결합한 형태의 큐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한다. 박동진 사원은 “‘여행을 주제로 큐레이션하며 제주도 관련 서적과 커피 브랜드 상품을 함께 뒀다 각종 여행 커뮤니티 포스팅에 제주도 카페가 많다는 점에 착안한 사례라고 말했다. 이용자에게 책을 넘어 하나의 취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부쿠'에서는 사랑의 두 모습을 하나의 기획으로 전시하고 있다.

 큐레이션으로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작은 서점들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인사동 부쿠는 독특한 큐레이션으로 아는 이들 사이에선 유명해진 서점이다. 서점 입구에 자리한 메인 진열대는 특정 주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담는다. 기념일이 많던 2~3월에는 사랑에 대하여를 주제로 큐레이션을 기획했다. 반으로 나눈 진열대 한쪽에는 사랑의 따뜻함을 다룬 책이, 반대쪽에는 사랑의 어두움을 다룬 책들이 놓였다. 부쿠의 송연화 큐레이터는 사랑으로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사랑에는 집착, 배신 같은 어두운 면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서점에는 맥락이 있어야 한다

 한국 서점가에 본격적으로 큐레이션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5년 전쯤이죠. 큐레이션을 내세운 독립서점이 하나둘 생겨나고, 광화문 교보문고가 츠타야(TSUTAYA)를 모델로 대대적인 리뉴얼을 시도했습니다.”

 츠타야는 일본의 서점 체인으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큐레이션을 통해 일본 전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예술 코너로 시작한 책장이 패션, 디자인, 인테리어, 건축으로 이어지는 식의 맥락장으로 공간 전체를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츠타야는 기존 서적 분류방식에서 벗어나 생활에 밀접한 22개의 새로운 분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류들 사이에 맥락이 흐르게 했죠. 각 코너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면서 독자가 다음 코너로 자연스레 관심을 이어가는 겁니다.”

 교보문고를 비롯한 몇몇 한국 대형서점들도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아직은 단편적인 큐레이션에 그친다는 게 이용주 대표의 생각이다. “교보문고가 당시 유행하던 혼밥, 집밥 코너 등을 만들긴 했지만, 특정 단어를 선정해 책 몇 권을 옆에 뒀을 뿐입니다. 여러 서장을 아우르는 전체적인 맥락은 없는 게 아쉽죠.” “베스트셀러가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대형서점이 새로운 도전을 할 자신감을 못 얻고 있다고 이용주 대표가 풀이했다.

 제대로 된 북큐레이션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교보문고 MD 자리를 박차고 나온 조성은 북큐레이터 역시 흐름이 있는 큐레이션을 주목했다. “산업디자인을 키워드로 큐레이션을 한다면 영국 산업디자인의 아버지인 윌리엄 모리스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르는 과정을 전반적으로 보여줘야 해요. 이용자들은 그곳에 오래 머물면서 지식을 확장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거죠. 한 공간에 놓인 디자인 전공 서적과 디자인 그림책, 디자이너 수필은 서로 맞물리며 산업디자인의 여러 면을 자연스레 보여준다. “<, , >라는 책도 역사 책장에만 꽂혀 있을 게 아니에요. 맥락에 따라 바이러스와 연결될 수도, 국가와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서점은 새로운 맥락을 계속해서 제안해야 합니다.”

 최근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결국 이용자들을 오래 머물도록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나타난다. 아크앤북은 서점 안에 식당, 카페 같은 편의시설을 함께 배치하는 전략을 시도했다. 책장 사이에 식당을 위치시켜 밥을 먹으면서도 서점을 둘러볼 수 있다. 박동진 사원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취미 생활을 하러 서점을 찾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점도 도서 구매라는 기능에서 나아가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거죠. 퇴근 후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 뒤 남는 시간에 책을 읽다 가는, 고객의 생활에 스며드는 장소가 됐으면 합니다.”

 부쿠 역시 오프라인 행사를 열고 있다. 작년에는 서점 안에서 와인 모임을 열었다. 한 작가가 좋아하는 술이었다. 왜 이 술을 좋아했는지, 그 작가 스타일은 어떤지 등등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1주일에 한 번은 같은 책을 읽는 음독모임도 있어요. 이외에도 책 관련 모임을 다양하게 시도하려 합니다. 서점이라고 해서 꼭 책을 파는 곳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 서점의 새로운 기능에 대한 고민이 서점업계 내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동인 기자 what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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