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의 방향성 아쉬워

이공계 집중지원은 불가피

대학원, 연구와 교육이 괴리돼

기부금으로 연구도 지원해야

교수 간 협력과 경쟁 필요

 

  대학은 교육기관이자 연구기관이다. 한국 대학은 산업화 시기 이전까지 학부 중심으로 운영되다 1971년 최초의 연구중심 대학인 카이스트가 설립됐다. 이후 교육부와 과학기술처를 통해 대학의 연구에 대한 지원이 시작됐고, 1999년 교육부의 1단계 BK21사업이 시행되며 연구중심대학의 육성방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아직도 대학의 연구 역량 발전을 위한 과제가 많다. 연구비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국립대는 정부 지원에 대부분 의존하고, 사립대는 그마저도 부족해 재정난에 허덕인다. 정부의 연구지원사업은 우수 인력의 확충에는 도움이 됐지만, 연구의 질적 성과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전문가들은 한국의 대학원 교육이 연구와는 동떨어져 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본지는 박희등 본교 기획예산처장, 전승준(이과대 화학과) 명예교수와 서면 인터뷰를, 최흥석 본교 대학원장, 이상훈 본교 이과대학장과 대면 인터뷰를 통해 대학연구가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 카이스트, 포스텍 등 연구형 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이상훈 이과대학장 | 한국에서 고려대는 연구와 교육, 둘 다 잘해야 하는 포지션에 있다. 하지만 국내에 국한해 비교해도 일단 교수들의 출발점이 다르다. 신임교수의 정착연구비 규모가 카이스트, 포스텍은 몇억 단위다. 본교 같은 사립대는 1억도 힘들다. 카이스트, 포스텍은 대학원생의 학비를 면제해주고, 생활비 역시 일부 지원해주기도 한다.

  최흥석 대학원장 | 고려대도 연구형 대학을 지향한다. 다만, 고려대는 전체 학생 중 학부생 비율이 약 70%로 카이스트 등에 비해 높은 편이다. (2019101일 기준으로 서울캠퍼스와 세종캠퍼스 재학생 중 학부생의 비율은 약 74%)

  연구형 대학은 기본적으로 지식을 창출하는 대학이다. 지식을 단순히 배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식을 창출하고 사회를 끌고 나가야 한다. 고려대도 연구형 대학으로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학생들은 창출된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최흥석 대학원장(정경대 행정학과 교수) 연구 분야 : 지방행정, 공공관리
“고려대도 연구형 대학으로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야 한다”

 

  - 교육부의 ‘BK21’ 사업이 대학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나

  이상훈 학장 |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선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기자재와 공간이고, 두 번째는 인력이다. 좋은 기계가 있어도 학생이나 교수가 아이디어를 못 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수한 인력의 확보가 더 중요하다. BK21사업은 대학원생들에게 등록금과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연구비의 70% 정도를 대학원생들에게 주고 나머지를 사업운영비로 사용한다. 쉽게 말해 카이스트, 포스텍 등의 대학과 다른 대학의 균형을 맞춰주는 거다. 이런 측면에서 BK21사업은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됐다.

  BK21사업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연구지원사업의 방향은 조금 아쉽다. 연구의 질적 성과를 추구하게끔 사업이 짜여있지 않다. 우수한 국내 연구자들이 뚝심대로 연구를 끌고 갈 수가 없다. 연구 제안서를 평가하고 연구비를 줬으면 지원이 끝날 시점에는 논문의 개수가 아니라 계획대로 연구를 잘 진행해왔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중요한 연구는 매우 오랜 기간 걸쳐서 진행된다. 연구자들이 결과물을 못 냈어도 할 일을 제대로 했으면 인내심을 가져달라는 거다.

  전승준(이과대 화학) 명예교수 | 정부의 대학연구 지원사업은 교수들의 연구에 틀림없이 도움 됐다. 문제는 정부가 생각하는 방향이다. 정부는 재원을 공급하는 입장에서 입맛에 맞게 사업들을 만들려고 한다. 예를 들어, BK21은 초기 구상단계에서는 서울대 등 국립대를 연구중심대학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는데 사립대가 반발해서 소수의 대학을 집중 지원하는 사업으로 시작했다. 2기에는 많은 대학이 반발해서 다수의 대학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시작하는 4기 역시 또 변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 정부의 지원이 이공계 중심으로 쏠려있는 상황이다

  전승준 교수 | 우리나라에서는 연구비를 상금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이나 회사가 제공하는 연구비는 상관없지만, 국가 연구비는 상금으로 주면 안 된다. 연구비는 학자들이 지식을 사용해 결과물을 보여주는데 필요한 경비만큼을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형평성을 고려해서 인문계와 이공계를 공평하게 지원한다고 하면 (경비가 적게 드는) 인문계의 연구비는 상금이 될 수 있다.

  최흥석 원장 | 지금은 빅사이언스 시기다. 아무래도 이공계 쪽에서 연구자금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인문사회계도 그동안 여러 가지 연구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프로그램 형식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인문사회 연구가 늘어나야 하는 건 맞다. 예전보다 많이 강화됐는데, 여전히 인문사회계 쪽의 지원 비율이 아직은 낮다. 예를 들어 직접 R&D하는 쪽에는 많은 돈을 쓰지만, R&D를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인문사회적 연구, 평가적 연구에는 별로 돈을 안 쓴다. 그런 측면은 있다.

 

 

  - 사립대의 경우 재원의 다양화도 중요한 과제다

  이상훈 학장 | 학교에서는 여러 수익사업을 추구해 경제적 재원을 다양화해야 한다. 기부금을 연구활동 지원에도 사용하도록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돼야 한다. 한국 대학의 문제 중 하나가 기부금을 받아오면 대부분 건축비나 장학금으로 사용한다는 거다. 물론, 장학금도 줘야 한다. 근데 그러고 나면 그 외에 지원할 수 있는 돈은 하나도 없다. 미국은 기부금을 받으면 건물도 짓겠지만, 연구자에게 주는 경우도 많다.

  최흥석 원장 | 연구재원의 다양화에는 아직 아쉬운 면이 많다. 기부를 많이 받는다고 해도 시설에 투자해달라는 식으로 꼬리표가 달린 게 대부분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문제해결형 기부가 많다. 알츠하이머나 탄소저감 등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연구를 해달라고 기부하는 거다. 자연과학 또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부인데,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문제해결형 기부가 활성화된다면 도움이 많이 될 거다.

  박희등 기획예산처장 | 본교는 재원의 다양화를 위해 여러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려대의 우수한 교육콘텐츠와 브랜드가치를 이용한 한국어센터와 평생교육원 운영이 대표적인 사례다. 더불어 최고경영자과정 등의 비학위 프로그램도 학교 재원 확충에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주춤하긴 하지만, 이러한 사업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 미래 연구자를 기르는 것이 대학의 연구 발전으로 이어진다. 현 대학원 교육에서 아쉬운 점은 없나

  이상훈 학장 | 대학원에서의 교육이 연구와 잘 연결돼야 한다. 한국 대학원의 교육시스템은 미국의 시스템을 모방했다. 학부에서 기본 과목 배우듯이 대학원에서도 기본 과목들이 있고, 그다음에 연구에 관련된 걸 배운다. 이런 방식이 내가 대학을 다닌 80년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그 전통적인 커리큘럼이 유지되고 있는 거다. 우리나라 전체 교육시스템의 문제다.

  학부 다닐 때 웬만큼 배웠으면 심화 내용은 필요할 때 따로 공부하면 된다. 지금은 새로운 분야들이 너무 빨리 변한다. 블록 쌓듯이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고 나서 연구를 시작하면 유동적인 연구를 하기 힘들다.

이상훈 이과대학장(이과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 분야 : 고체물리학
“대학원에서의 교육이 연구와 잘 연결돼야 한다”

 

  - 비전과 추진력을 가진 외부 행정가 영입을 통해 연구 발전을 꾀하는 방안은

  전승준 교수 | 독일이나 미국의 연구중심 대학이 발전하는 역사에는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한 행정가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스탠포드다. 1930년대만 해도 스탠포드는 서부의 별 볼 일 없는 지방 대학이었다. 그런데 MIT 출신의 전자공학자인 프레더릭 터만(Frederick Terman)’ 교수가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로 부임하고 행정가로 활동하면서 스탠포드를 미국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었고, 실리콘밸리가 만들어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러한 행정가들은 대학의 발전뿐 아니라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전승준(이과대 화학과) 명예교수 연구 분야 : 물리화학
“독일이나 미국의 연구중심대학이 발전하는 역사에는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한 행정가들이 있었다”

 

  - 연구 능력을 기르기 위해 한국 대학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

  이상훈 학장 | 공동연구가 부족하다. 미국 교수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연구하면서도 공동연구도 긴밀하게 잘 진행한다. 독일은 교수 한 명이 조교수, 부교수 등을 피라미드 구조로 관장해 이끈다. 그 안에서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한국의 교수들은 연구를 개인적 결과물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혼자 연구해서 인정받으려는 전통적인 자세가 있는 거다. 나 역시 외국에서 교육받고 왔는데 공동연구를 잘 진행하지 않는다. 같이 연구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는 인식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박희등 처장 | 우수한 역량을 가진 교수들이 필요하다. 우수한 역량을 가진 교수를 영입해 대학과 학과 간 경쟁을 유도하고, 역량 있는 교수가 학과의 중심이 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충분한 재원이 필요하다. 연구비는 교육에 드는 비용의 몇 배에 달한다. 연구비 확충을 위해 국가 차원의 지원을 늘리고, 대학은 재원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구와 교육이 연계돼야 한다. 연구에 기반해 학생을 교육하고, 실력 있는 학생과 협업하여 우수한 연구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박희등 기획예산처장(공과대 건축사회환경공학과 교수)
연구 분야 : 미생물 이용한 수질정화시스템
“우수한 역량을 가진 교수 영입을 통해 대학 및 학과 간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 연구형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고려대의 계획은

  박희등 처장 | 대학원 조직을 확대·개편할 예정이다. 대학원생에게 더욱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교육과정의 개편과 이를 뒷받침할 학사구조의 개혁도 포함된다. 유연한 학사제도와 학생수요자 중심의 교육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더불어, 대학원의 위상 강화를 위해 대학원장의 직급을 부총장급으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대학원생들이 학문후속세대로서 성장하도록 다양한 연구 지원 프로그램과 펠로우십 제도도 도입할 것이다.

 

박성수 시사부장 park@

사진제공전승준 교수

박희등 기획예산처장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