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직장에 입사한 지 한 달이 됐다. 일명 허니문시기가 끝나니 이내 후회와 괴로움이 밀려왔다. ‘이런 게 싫어 퇴사했는데싶어 입술이 저절로 깨물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단체 카톡방에서 공모사업을 발견했다. 마감일은 이틀 후. 구미가 당겼지만, 시간이 촉박해 지원할지 말지 고민이 됐다. 평소 같이 이것저것 해보자고 얘기했던 S에게 연락했다. S가 같이하겠다고 하면 지원하고, 아니면 말 심산이었다. 의외로 S는 흔쾌히 승낙했고, 당장 그날 만나기로 했다.

  사실 S를 비롯한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구상해둔 아이템이 있었다. 네 사람 모두 직장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걸 꿈꿨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알리고 브랜드화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 기회에 사업비 지원을 받아 제대로 일을 벌여봐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원대한 꿈을 안고, 합정의 한 카페에서 S를 만났다. 노트북을 펼치고 사업계획서의 내용을 하나하나 채워가기로 했다. 복잡한 서식에 막막했지만 둘이 머리를 맞대면 뭐라도 나오겠지 싶었다. 하지만 나만큼이나 S도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다른 두 명에게도 연락했지만, 한 명은 지방에 있었고 한 명은 흔쾌히 자료를 보내겠다고 하더니 감감무소식이었다. 그제야 절감했다. 결국 내가 혼자 다 해내야 한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다들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이것도 하자 저것도 해보자, 예산안에 대한 개입은 거침없었고 금액 책정도 후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획의 구체화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 기획서를 붙들고 씨름하다, 하루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는 N에게 전화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실연의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기획서 쓰기도 바쁜데 2시간 동안 고민 상담까지 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며, ‘나 혼자 할걸’ ‘아니, 그냥 시작하지 말걸하는 생각이 수십 번은 오갔다. 뭔가를 같이 하자고 동의했어도 각자 머릿속에 그리는 모습은 딴판이었다는 걸 알았다. 시간이 없으니 대충 의견을 봉합해 기획서를 제출했다.

  덕분에 제대로 인생 수업을 받았다. 일로 만났을 때 친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았고, 대단한 줄 알았던 아이템이 실은 얼마나 빈약하고 허술했는지도 알았다. 새삼 따박따박 돈을 주는 직장의 소중함까지 느꼈다. , 과연 직장독립만세의 그날은 언제 올 것인가.

<아우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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