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학생사회가 14년 만에 서울총학 없이 1년을 보내게 됐다. 작년 11월 선거는 투표율이 22%에 그쳐 무산됐다. 4월 재선거에 단독 출마한 시선선본은 68%의 지지(투표율 34%)를 얻으며 당선 문턱까지 갔으나, 선거세칙 위반으로 막판에 후보자격을 박탈당했다. 게다가 선관위는 규정에 얽매여 사회상식에 비껴가는 결정을 내렸으니, 선거 내내 안타까움이 남았다.

  이번 선거는 이른바 학생회 하는 사람들의 역량과 리더십이 얼마나 부족한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학생들은 지금까지의 서울총학과 후보자들의 공약을 보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학생회는 학생들에게 아무런 효능감을 주지 못했다. 학생들의 무관심이 문제가 아니다. 대학생활 동안 겪는 고충을 해결하겠다는 신뢰를 주는데도 냉소를 보낼 학생은 없다.

  그런데도 총학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면, 학생들이 대학현장에서 겪는 애로를 총괄해서 수합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능은 오로지 학생회만 할 수 있기 때문일 테다. 학교당국이 직접 나선다 해도 학생들의 내심을 세세히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학생회가 학생 당사자로서 눈앞 현장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수 년 간 지켜본 총학은 근본적인 구조를 바꿔야한다며 대()학교 투쟁에 힘을 집중했다. 전대는 회계비리가 명분이었고 전전대는 총장 선출이 주요 아젠다였다. 중요한 사안일지언정 학생의 일상과 직결된 문제는 아니었다.

  가지치기도 제대로 못 하는데 뿌리를 손 볼 순 없다. 어려운 일보다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길이 보인다. 거창한 공약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일상의 작은 불편부터 해결하길 바란다. 우선순위를 거꾸로 세우니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임기를 끝내온 것이다. 그러고는 학생 무관심을 탓하니 제자리만 맴돌 뿐이다.

  위기라는 말이 이제 식상할 정도로 총학은 자리를 잃었다. 그래도 한 줌 희망을 쥐며 올해가 학생사회 퇴락의 분기점이 아닌 반등의 분수령으로 기록되길 기대해본다. 학생들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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