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초기 우리나라는 상당수 국가로부터 입국금지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K-방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모범 방역 국가가 되고 있다. 따가운 눈총이 뜨거운 찬사로 바뀌는 데 불과 두어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어지러울 정도다.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유력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방역에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를 소홀히 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비판했다. 확진자의 이동경로 등 위치정보를 공개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워낙 빠른 전염성으로 길거리에 시신이 방치될 정도로 급속히 확산되는 현실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워 방역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것은 자칫 한가한 소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개인이 그 자신의 잘잘못을 떠나 대량살상무기처럼 수백, 수천 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감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민감 정보에 해당하는데, 이번 이태원 클럽 사태에서 보듯 위치정보도 경우에 따라서는 정보주체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민감 정보가 될 수 있다.

  이런 개인정보가 질병관리본부와 같은 공적 기관의 통제 하에 오로지 방역을 위해 활용된다면 다행이지만, 혹여 민간 기업에 흘러들어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미 건강상담기록이나 병원의 처방전 같은 건강정보가 대규모로 헬스케어 기업에 유출돼 심각한 법적 분쟁이 발생한 적 있다(2015IMS Health Korea 사건, 우리나라 국민 4399만 명의 의료정보 47억 건이 20억 원에 불법거래 유출되었음).

  최근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GAFA)이 너나할 것 없이 헬스케어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51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The Immunity of the Tech Giants’라는 제하의 칼럼은 팬데믹 종료 후 막대한 건강정보를 수집한 빅 테크 기업의 위험성을 경고했는데, 맥을 제대로 짚은 것이라 생각된다. 프라이버시와 개인정보 보호가 방역을 위해 양보되어야 한다는 데 크게 이론이 없지만, 건강정보 등 개인정보가 빅 테크 기업의 수중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것에 우려의 눈길을 거둘 수 없다.

  팬데믹 와중에 연구 목적으로 기증된, 항체가 형성된 혈액을 수만 달러에 매매하는 것이 보도된 적 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현실에서 항체가 형성된 혈액을 필요로 하는 부자들이 있는 이상 부르는 게 값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빌 게이츠는 거액을 쾌척하여 중복 연구 및 투자를 피하고 하루 속히 백신을 개발하자는 깃발을 들었다. 많은 나라와 연구소가 이에 부응하고 있다. 그런데 먼저 개발하고 특허로 등록하여 독점적 이윤을 얻고자 하는 기업, 연구소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특허권 제도 자체가 인간의 이기심을 이용한 제도이기 때문이다(인센티브 이론).

  항체가 형성된 혈액 매매 사례와 유사한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실제 미국 대학병원 의사는 희귀질환자로부터 골수를 받아 이를 토대로 연구를 하여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고 그에 따른 특허권을 취득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골수 기증자는 특허권의 일부를 이전해 달라고 청구했으나 미국 법원은 동의의 적법성을 다툴 수 있을 뿐 기증자가 연구결과물에 대한 재산권(특허권)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Moore v.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51 Cal. 3d 120 (1990)]. 항체 형성 혈액이 연구목적으로 이용되는 줄 알고 동의했다면 비록 그 과정에서 명목적 수준의 금액이 수수되었다 하더라도, 후에 그것이 수천, 수만 불에 팔린다면 동의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다투어볼 여지가 있다 할 것이다.

  전염병을 막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한가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건강정보가 빅데이터 기업에 흘러들어감으로써 공적 통제력이 없이 영리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과 항체가 형성된 혈액이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가로채는 현상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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