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어수선한 시국에도 공분을 자아낸 드라마 <부부의 세계> 최고의 명대사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정열로 정의하는 사랑은 때론 더 긍정되기도 한다. 감출 수 없는 감정은 마치 사랑의 순수성 그 자체로 보인다. 갓 연인이 된 이들이 좋을 때라며 부러움 담긴 축원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혼 20년 차에 이른 부부의 신혼 초 같은 애정. 극 초반 주인공 부부의 완벽함은 정열적인 사랑으로 완성된다. 극 전반에서 사랑한다는 말과 동일시되는 정열은 그들 세계에서 필수적 요소다. 남편은 정념적 사랑을 앞세워 당당히 외도를 밝히고, 이혼한 아내를 다시 찾는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내연녀마저도 결혼을 다짐하기 전, 가장 먼저 상대의 사랑을 집요하게 확인한다.

  동시에 질투의 감정도 극 전면에 들어선다. 신뢰가 아닌 정열이 사랑일 때, 질투는 사랑의 대립항이 아니라 과정이자 산물이 된다. 주인공 부부의 결혼 생활은 끝났지만, 시청자는 여전히 표출되는 질투로 이어지는 그들의 정열을 확인한다. 우연히 마주친 전 아내와 전 남편, 그녀 옆 낯선 남자를 보는 전 남편의 눈에 질투가 담긴다. 감출 수 없어 내연녀가 눈치채버릴 정도다. 우스운 것은 그 질긴 감정이 정작 사랑의 지속성을 이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계속 사랑하고 싶다면 정열이라는 재료는 불순물이다. 소설 <클레브 공작부인>에서 샤르트르 양은 신실한 남편인 클레브 공을 결혼 중에도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정열이 없는 그녀와 그 사이엔 질투도, 연소될 재료도 없다. 미망인이 된 그녀는 정열의 대상인 느무르 공과의 관계에서도 재혼이 아닌 이별을 선택한다. 사랑의 행복한 결말이라는 결혼, 정념은 사랑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 아닌, 소거해야 하는 요소인지도 모른다. 샤르트르 양은 느무르 공을 떠나며 말한다. “영원한 약속 안에서 그 열정을 계속 간직할 수 있을까요? 제 모든 행복이 될 그 열정이 결국에는 사그라지는 걸 분명 지켜봐야 할 거예요.”

 

김예정 기획부장 bre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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