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의 일각은 정신분석학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반적인 비유다.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부분이 의식이라면, 수면 밑에 잠겨 있는 빙산의 대다수가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때 얼음이 물에 잠겨 있는 비율이 0.917이다. 그런 점에서 이현화의 희곡 <0.917>(1978)은 제목에서부터 인간의 무의식을 다루겠다는 의도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1980<0.917>을 연극 무대에 올렸던 채윤일도, 1984년 두 번째 연출에서 이 희곡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고 연출의 변을 밝힌다.

  “혼자 숙직하는 남자를 찾아와 뭔지 모를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어린 소녀, (……) 이런 것들이 현대인의 성()과 연결돼 작품 속에 뼈다귀처럼 가로걸려 나타나요. 아마 현대인의 무기력한 심성, 화사하고 고운 외양에서 오는 공포, 이런 것들을 작가는 제시하고 있는 거라고 해석했지요.”(‘창작극 ‘0.917’ 무대 올린 연출가 채윤일 씨’, 경향신문, 198439) 실제로 이 작품에는 합리성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일상적인 것의 기괴한 면모언캐니(uncanny)가 부각되어 있다.

  희곡의 해설도 그렇다. “꿈속처럼 먼 곳으로부터 다가오기 시작하는 기적소리처럼 을 강조하고, 평서형 외에 의문형과 추측형의 문장을 사용해 모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 외 전설 같은 뽀오얀 음색으로 열두 점을 알린다도 몽환적 분위기를 형성해내는 지시문이다.) ‘숙직실이라는 한정된 장소, ‘남자소녀’(+여자)라는 제한된 인물의 등장도 무의식의 심층을 더욱 밀도 있게 천착하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장소와 인물을 최소화함으로써 내적 내러티브에 집중할 수 있는 무대환경이 구축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설정한 시간대는 밤 12시다. 이성과 현실의 법칙이 통용되는 시간이 낮이라면, 비이성과 꿈의 논리가 작동하는 시간이 밤이다. 관객에게는 들리지 않는 노크 소리를 남자만 듣는 장면, 그러고 나서 문을 열었는데 소녀가 서 있는 장면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제반 조건 하에서 등장인물들의 뜬금없는 말과 행동은 들뜨지 않고 희곡 안에 일관된 분위기로 스며든다.

  위에서 썼듯이, 이 작품을 분석할 수 있는 일차적 방법은 정신분석학이다. 정신분석학의 기초 개념인 이드와 ()자아로 <0.917>이 담아내는 이야기를 어느정도 풀어낼 수 있다. 우선 회사원으로서 당직을 서야 하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남자를 초자아로, 이런 그를 위협하고 자극하는 욕망의 소녀를 이드로 볼 수 있을 테다. 남자와 소녀의 갈등과 살해초자아와 이드의 충돌 및 억압뒤에 나타나는 여자는 자아이리라. 초자아(남편)의 부인이면서 이드(소녀)의 목소리로 웃는 여자는, 초자아와 이드 사이에서 중첩된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아의 면모를 갖는 캐릭터다.

  이들은 캐릭터로 구분되어 있지만, 한 사람의 무의식을 표상하는 등장인물로 보인다. 그래서 소녀(+여자)가 숙직실의 구조와 남자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는 빙산의 일각 아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빙산처럼, 인간의 행위 아래 보이지 않는 내면이야말로 가장 부조리한 것일 수 있음을 <0.917>을 통해 구현한다. 합리적 이성은 고작 0.083에 불과하다. 이런 자명한 진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허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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