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후 복학생으로 동갑내기 친구들보다 뒤늦게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우울함과 조급함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문득 석양으로 물든 하늘을 올려다볼 때는 왠지 모를 쓸쓸함과 자괴감이 두서없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면 가끔씩 집 앞 생맥주 가게에서 혼자 앉아 자존감이 상실된 나의 20대 초반을 안주 삼아 한두 잔의 생맥주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나의 젊음과 미래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어찌할 수 없는 희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이 비틀거려도 동해바다에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가는 용기를 내자고 나는 매일 같이 삶에 대한 열망을 노래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불안한 젊음의 뒤안길에서 서성거리던 자신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통해 나는 스스로와 화해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인문학을 전공하던 나는 나름대로의 생각과 고민 후에 영화를 공부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내가 대학시절을 보낸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인이 되겠다는 대학생은 드문 시절이었다. 연극영화과도 전국의 대학에 몇 개밖에 없을 정도였고, 영화 산업은 현재에 비교하면 상당히 낙후된 상황이었다. 한국 영화와 한국 영화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시절이기도 했다. 나의 주변엔 영화와 관련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인이 된다는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담보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영화를 공부하겠다는 나의 의지와 열정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포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능동적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영화에 관한 기본 지식을 습득해가면서,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관계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이후 영화에 관한 나의 학업과 활동에 관한 토대와 큰 그림은 모두 대학시절에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다시금 생각해봐도 어떠한 보장 없는 불확실함에도 흔들림 없이 20대에 나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한다는 설렘과 즐거움 때문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과연 나는 20대의 대학시절처럼 나의 일에 대한 설렘과 즐거움과 용기를 지니고 있는지 오랜만에 자문해 본다.

 

편장완 교양교육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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