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도록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코로나19’로 내가 속한 유통업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안을 찾기도 어려워서, 언제부턴가 해결하지 못하고 쌓여만 가는 업무에 무력감을 느꼈다. 업무적인 것만 그런 것은 아니다. 작년 여름께부터 적은 돈도 아끼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사회생활 10년 차가 됐지만 경알못(경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내가 불만스러웠기 때문이다. 재테크 및 경제 분야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고, 지난 4월에는 부동산 경매 수업을 듣기도 했다. 강사 대부분이 20대 때부터 공격적으로 자산을 키워온 사람들이었다. 이에 긍정적인 자극을 받다가도 무주택자인 현실에 한편으론 마음이 조급해지는 걸 느꼈다. 열심히 살다가 갑자기 무기력감을 느끼거나 여유를 잃고 조급해지거나, 타인의 언행에 쉽게 상처받기도 하는, 이른바 번아웃시기가 온 것이다.

  이에 나는 과거의 경험에서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려 했다. 대학교 3학년 여름, 35일간 홀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기차로 먼 거리를 이동하고, 매일 10시간 넘도록 걸으며 부지런히 유명한 관광지, 박물관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배낭여행 10일 차에 파리의 흐린 날씨 때문인지, 어느 순간 나는 극심한 외로움과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여행에 번아웃상태가 찾아왔던 것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남은 여행에서는 도시마다 새로운 여행자들과 동행하며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3년 전 직장 여름휴가 때 78일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피레네 산맥을 건너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국경을 건너다가, 태어나서 처음 맞는 세기의 강풍으로 바위 뒤에 숨어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평지에서는 외면했던 한국인 여행자 2명이 있었는데, 그들도 각각 홀로 여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그 자리에서 동행을 결심하게 됐다. 덕분에 남은 6일의 일정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할 수 있었다. 함께 걷고, 힘들면 주저앉아 쉬고, 서로 돌보며 응원해준 시간이 그 여행에서 얻은 값진 선물이었다.

  어쩌면 사람들과 동행하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번아웃상태가 찾아왔던 건 아닐까? 요즘에는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일상 속 즐거움을 되찾아가고 있다. 점심시간에 시청광장에서 함께 김밥과 컵라면을 먹고, 덕수궁 카페에서 연못가를 바라보며 놀다 오기도 했다. 취업 준비 중인 여동생의 진로 고민을 들어주고, 오랜만에 집으로 찾아온 친구와 산책을 하고나만 바라보며 내 앞에 떨어진 업무와 삶의 과제에 집중하는 삶을 지속하는 게 어렵다고 느꼈을 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닫아뒀던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그러자 관계에 속하는 기쁨을 다시 누리게 됐으며, 이것이 활력이 되어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된다는 믿음으로 자기 자신과 일상을 통제하던 삶에 갑자기 번아웃이 찾아왔다면, 스스로에게만 몰두하고 욕심 부리던 삶에서 서로 지지할 수 있는 동행하는 삶으로 돌아오라는 신호가 아닐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동료, 친구, 가족들을 돌아보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동행을 결심하는 것이 자기에게 몰두하느라 지쳐버린 길 위에서 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청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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