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번의 토론 수업을 들으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부럽다세 글자였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논리정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펼쳐나가는 모습이 그저 부러웠다. 나는 예전부터 토론이나 토의, 발표 수업과 같이 말하기가 중심이 되는 수업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나의 한마디 한마디가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대부분의 말하기 수업에서 나는 자진해서 발표한 적이 거의 없다. 혼자 속으로 나도 의견을 글로 써내라면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만 되뇌곤 했다.

  리포트나 에세이 등 글로 써내는 과제는 곧잘 해내곤 했다. 그런 쪽에 자신도 있었고, 얼굴을 붉히며 발표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생각을 몇 번이고 정리해서 제출할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큰 메리트였다. 하루는 이런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자신은 나와 정반대라면서 놀라워했다. 말로 얘기해도 되는 부분을 굳이 글로 적으려니 머리 아프고 피곤하다며, 글쓰기 과제가 너무 싫다고 했다. 친구는 오히려 말하기 과제가 직접적이고 편하지 않냐고 말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답이었던 것이, 그 친구는 말하기 수업이면 토론이든 발표이든 가리지 않고 맹활약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가 말하기에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가끔 모든 수업이 강의식 수업이고, 모든 과제가 글로 써내는 과제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수업과 평가 방식이 될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말하기 중심의 수업과 과제를 편하게 생각하고, 모든 수업과 과제가 말하기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쪽으로만 편향된 교육과정이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자신이 잘하는 부분만 반복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몸에 좋은 한 가지 영양소만 섭취한다고 건강해질 수는 없는 것처럼, 사람은 다방면의 능력을 골고루 키워나갈 때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말하기 수업에서 나는 나에게 부족한 조리 있게 말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글쓰기 과제를 통해 내 친구는 생각을 정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결국 나에게 알맞은 수업방식, 혹은 평가방식은 내가 잘하는 부분 위주의 방식이 아니라, 잘하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이 골고루 섞여 있는 방식인 것이다.

  앞으로의 토론 수업에선 자신 있게 의견을 얘기해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글쓰기뿐만 아니라 말하기까지 잘 해내는 나를 볼 수 있겠지.

 

김도욱(보과대 바이오의과학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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