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스포츠전문채널 ESPNKBO리그를 하루 1경기씩 중계방송하고 있다. 먼 훗날 2000년대의 한국스포츠를 정리한다면 ESPNKBO리그 중계를 한 줄 슬쩍 넣고 싶다. 방송은 스포츠를 뛰어넘어 문화적, 산업적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억만금을 준다고 한들 ESPN이 두산과 LG의 라이벌 스토리, “사직구장은 세상에서 제일 큰 노래방이라고 한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 이야기, ‘한화 팬이 보살 팬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방송에서 소개할까? 그러나 코로나로 변한 2020년 세상에선 ESPN이 스스로 KBO리그 스토리를 찾아 열심히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

 잠깐 시간을 되돌려 보자. ESPNKBO리그 중계방송 얘기가 나왔던 지난 4, 프로야구 시장 관계자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메이저리그 보던 사람들이 KBO리그 보겠어요? 올해 잠깐이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진지한 의식의 문제, 사대의 관점이 아예 상상을 금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경제계의 거물 정주영을 떠올려 보자. 그는 해 봤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현대자동차의 미국 진출, 조선소 건설 등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정주영의 해 봤어?”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코로나19로 잡은 우연찮은 기회, KBO리그가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에 방송되고 K리그가 해외 17개 나라에서 방송되는 이 기회를 올해 잠깐일 테지로만 치부해야 할까.

 왜 상상하지 못할까. 세상을 향한 거침없는 상상이 부족한 이유를 나는 사대의 유산이라고 본다. 큰 나라와 작은 나라를 구별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리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소중화(小中華)와 재조지은(再造之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조선은 작은 나라라서 망한 것이 아니라 무능한 왕과 부패한 관리들로 인해 망했다.

 해방으로부터 72년이 지난 2017, 벽안의 미국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sh)한국인은 왜 독립적 사고를 못하나라는 글을 썼다. 그는 한국은 지식수준도 높고 아이비리그 출신도 많은데, 독자적인 시각과 비전을 제시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페스트라이쉬는 한국인이 독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 식민지 경험과 사대주의 관행, 제국 운영 경험이 없는 좁은 세계관등을 제시했는데,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다시 스포츠로 돌아오자, 스포츠에서 나는 그럼에도 희망을 본다. 스포츠는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이전의 한국인과는 다른 한국인을 길러내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히딩크의 아이들이 등장했고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선 ‘G세대가 탄생했다. 비단 선수들뿐이랴. 이들의 성공은 또 다른 영감이 되어 이들 세대는 이전 한국인과는 확연히 다른 세계관과 아비투스(habitus)를 지니고 있다.

 메이저리그와 경쟁하자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번 기회를 통해 해외 방송시장에서 메이저리그, 유럽축구의 대체재나 보완재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꾸자는 얘기다.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실패를 딛고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2021ESPN에서 KBO리그가 사라지더라도 2020년 중계방송에서 누군가는 또 다른 영감을 받고 또 다른 꿈을 꿀 수도 있는 일이다. 류현진도 그랬고 박병호, 강정호, 김광현도 그랬다.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할 때마다 나오는 얘기는 이들이 쿠바 출신이었다면 더 높은 금액을 제시받았을 것이다. 이는 한국 스포츠가 아직은 가공파생산업에서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동하는 선수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운동선수들의 경기를 가공하고 상품화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알리고 포장할수록 프로세계에선 상품 가치가 높아진다.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선 한국 선수들에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적용되지만 언젠간 코리아 프리미엄이 얹힐 때가 올 것이다. 적어도 사대의 DNA에서 벗어난 새로운 한국인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니까.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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