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곶이역 1번출구 주변 여성안심귀갓길. 분명 여성안심귀갓길이라는 도로면 표지가 있는데 어두운 주황빛 가로등이 골목을 더 스산하게 만든다. 재개발 구역과 맞닿아 있어 양쪽엔 빈집들이 늘어섰다. 비상벨은 SUV차량 뒤에 숨어 있다. 한 인근 주민은 워낙 어둡고 공사장도 많아 뒤따라오는 사람 발소리만 들려도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대검찰청 ‘2019 범죄 분석자료에 따르면, 전체 성폭력 범죄 42.1%가 밤 8시에서 새벽 4시 사이에 발생한다. 주거지(20.9%)와 길거리(12.3%)에서 성폭력이 자주 발생한다.

  2013년 경찰청은 밤길 안전을 위해 여성안심귀갓길을 도입했다. 바닥에 노란 글씨로 크게 여성안심귀갓길이라 써 놓고 보안등, 비상벨, CCTV, 위치표지판을 충분히 구비해 주거지 근처의 밤길 범죄를 예방한다는 목적이다. 성북구 서부를 관할하는 성북경찰서는 여성안심귀갓길 14, 동부를 관할하는 종암경찰서는 12곳을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성북경찰서 생활안전계 CPO(범죄예방전담팀) 박혜윤 경장은 범죄 발생률, 범죄 분포도, 112 신고율, 야간 조도, 여성 1인 가구 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2016년 여성안심귀갓길을 선정했다고 했다.

  “퇴근이 늦을 때 밤길이 무서워 근처 여성안심귀갓길을 지나서 가봤는데, 다른 곳이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차라리 제일 빠른 골목으로 뛰어가는 게 덜 무섭다.” 성북구 장위동의 한 빌라에 사는 박모(여/27) 씨가 바라본 여성안심귀갓길이다. 정책이 도입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안전한 밤길 조성까진 아직 부족하다. 성북구 내 여성안심귀갓길 12곳을 다니며 방범 시설물 현황을 살펴봤다.

안전한 귀가를 위해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된 법학관 후문 세븐일레븐 옆 골목길의 노면 표지다.
배수빈 기자 subeen@

 

  장애물이 가로막는 비상벨

  여성안심귀갓길 곳곳에 설치된 비상벨을 누르면 즉시 경찰을 호출할 수 있다. 법학관 후문 주변 여성안심귀갓길(종암중학교 담벼락 유정식당 오박사돈가스 골목)에는 두 개의 비상벨이 있다. 범우빌라 바로 옆 비상벨은 여러 번 눌러도 작동하지 않았다. 성복중앙교회 골목의 여성안심귀갓길 비상벨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종암중학교 담벼락에는 경찰차 호출만 가능한 기존 비상벨이 부착돼 있었다. 최근엔 누르는 즉시 통합관제센터와 통화가 연결되고 함께 설치된 CCTV가 현장을 촬영하는 디지털 비상벨이 많이 쓰인다. 박혜윤 경장은 성북경찰서 관할 여성안심귀갓길 비상벨의 70%는 디지털 비상벨로 교체된 상태라고 했다.

 

25일 저녁 법학관 후문 범우빌라 옆 방범용 비상벨이 작동하지 않았다.

 

  불법 주차나 간판, 쓰레기 무단 투기로 비상벨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지난 2월 경동고 주변 여성안심귀갓길(보문로161 삼선교로18나길26)의 비상벨은 한 가게의 에어간판과 불법 주차된 오토바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손을 뻗어도 누르기 어려운 상태였다. 석 달이 지난 5월에 불법주차 차량은 없었지만, 에어간판은 그대로였다.

  위급 상황에서 비상벨을 빨리 찾으려면 시인성(대상의 모양이나 색이 원거리에서도 식별하기 쉬운 성질)’이 높아야 한다. 비상벨 기둥 전체에 노란 시트지를 붙여 시인성을 높인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비상벨은 전봇대와 같은 회색 기둥에 부착돼 있어 어두운 골목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종암초등학교 옆 비상벨은 회색 기둥에 있는데다 광고 전단지까지 부착돼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초저녁 이후만 되면 3m 앞에서도 잘 안 보인다. 주변 원룸에 거주해 종암초를 자주 지나다니는 김경민(문과대 언어17) 씨는 이 일대를 오가면서 비상벨을 본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본교 정문 건너편 동대문구 안암로 22길에도 비상벨이 부착된 전봇대에 각종 불법 부착물이 많았다. 비상벨은 반쯤 가려져 있었다. 성북경찰서 박혜윤 경장은 비상벨의 시인성을 높이기 위해 비상벨 기둥에 LED 표지판을 설치하기로 했다현재 발주를 마쳐 6월 안에 설치를 완료할 것이라고 전했다.

가게 에어간판과 오토바이 때문에 비상벨에 접근할 수 없다. (보문로161 → 삼선교로18나길 26)

 

 

 

  주황빛보다 백색 보안등이 효과

  밤길을 가장 무섭게 하는 건 어둠이다. 보안등 설치는 여성안심귀갓길 정책 시행 이후 가장 활발히 진행된 사업 중 하나다. 성북구 여성안심귀갓길 대부분에는 보안등이 10개 이상 설치돼 있다.

  길음역과 정릉역 사이에 위치한 여성안심귀갓길(정릉로320 정릉로36)은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주황빛 가로등이 유독 어두웠다. 336m로 비교적 긴 귀갓길인데 비상벨과 CCTV가 한 대뿐이기도 했다. 길이가 300m 미만인 다른 여성안심귀갓길에는 대부분 비상벨과 CCTV가 각각 2대 이상이다. 종암동에 거주하는 김유정(사범대 교육18) 씨는 가로등이 있어도 어두운 주황빛이라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꼭 술 취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기척만 들려도 무섭다고 했다.

 

본교 정문 맞은편 주택가. 가로등이 적게 설치돼 있어 골목이 어둡다. (안암로 22길)

 

  윤성인(오산대 경찰행정과) 겸임교수는 범죄자들은 시각적으로 확인 가능한 방범과학기자재가 많은 곳, 가로등이 밝은 곳이나 순찰이 잦은 곳에선 범죄를 쉽게 저지를 수 없다고 했다. 경찰청과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지난 1월 발표한 범죄예방 환경조성시설기법 효과성 분석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로등의 영향 범위가 1km² 넓어질수록 범죄율이 16% 감소한다.

  최근 경찰은 기존 보안등보다 조도가 훨씬 높은 LED 백색 보안등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박혜윤 경장은 보안등을 추가 설치하는 경우엔 일반 보안등보다 훨씬 밝은 LED 백색등 설치를 권장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성북경찰서 관할 여성안심귀갓길의 보안등 조도를 전수조사했다조도가 20 (럭스) 미만인 보안등 3대에 대한 보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릉로320 여성안심귀갓길의 보안등도 그중 하나다.

 

  위치표지판, 밤에는 글자 안 보여

  112 신고 위치표지판은 경찰의 신속 출동에 도움을 준다. 신고자가 위치표지판에 적힌 위치 번호 (예컨대 200-24-)를 불러주면 관할 경찰서는 여성안심귀갓길 지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당 위치를 찾는다.

  현재 설치된 위치표지판은 야광이 아니다. 9시 이후 어두운 골목길에선 위치번호를 식별하기 어렵다. 가로등과 함께 설치된 위치표지판은 그나마 멀리서도 확인 가능했지만,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골목의 위치표지판은 2~3m 앞에서도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종암경찰서와 성북경찰서 관계자는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진행하는 환경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위치표지판 위에 LED 조명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여성안심귀갓길은 다른 구역에 비해 순찰 빈도가 높다. 탄력순찰구역으로 자동 지정되기 때문이다. 종암경찰서 생활안전계 CPO 송영준 경장은 주민들이 직접 순찰을 원하는 장소를 신청하면 그 구역의 순찰을 강화하는 탄력순찰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안심귀갓길은 아니지만 숭례초등학교 일대도 종암경찰서 탄력순찰 구역으로 선정돼 있다.

부동산 간판이 위치표지판을 가리고 있다. (성신여대입구역 →인촌7길 84-9)

 

  불필요한 귀갓길은 선정 해제할 계획

  성신여대입구역 주변 로데오거리라 불리는 동소문로 22길은 여성안심귀갓길 지정 구역이다. 길 양쪽엔 각종 상점과 음식점, 주점이 즐비해 있다. 10시가 넘은 시각에도 유동인구가 많고 주변 상가의 불빛과 보안등이 있어 다른 귀갓길에 비해 그리 어둡지 않다. 문정원(성신여대 작곡과19)씨는 성신여대 후문 쪽 원룸에 거주해서 여기 자주 놀러 오는 편인데 밤늦게 지나다녀도 무섭다는 느낌은 한 번도 못 받았다사실 여기가 여성안심귀갓길인 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주변의 또 다른 여성안심귀갓길(성신여대입구역 동소문로25가길 28)이 귀갓길로 선정된 이유는 해당 골목 주변에 2~301인 가구 여성이 많이 거주해서다. 동소문로22길 주변에는 상점과 식당이 즐비할 뿐 원룸촌이 형성돼있진 않다. 불필요한 곳에 여성안심귀갓길이 선정된 것이다.

  여성안심귀갓길은 아니지만, 보안등 확충이 시급한 곳도 있다. 본교 정문 건너편(제기동) 길로 들어서면 어둡고 좁은 골목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차 한 대가 지나가기도 힘들 만큼 좁은 골목 중간중간에 LED 보안등이 설치돼 있지만, 한밤의 어둠을 이기기엔 역부족이다. 제기동에 거주하는 경영대 20학번 성모 씨는 가로등이 있어도 바로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옷만 흐릿하게 보이는 정도라 불안할 때가 종종 있다고 했다.

  경찰은 518일부터 한 달간 여성안심귀갓길 안전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여성안심귀갓길 중 관리의 필요성이 낮아진 경우 심의를 거쳐 해제하고, 다른 구역을 추가로 지정할 계획도 있다. 디지털 비상벨을 늘리는 등 방범시설물의 보수도 진행하고 있지만, 즉각적으로 이뤄내긴 힘들다. 박혜윤 경장은 시설물 확충이나 보수는 구청의 도시안전과나 도로과와 협력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경찰서 예산만으로는 부족해 구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QR코드를 통해 탄력순찰구역을 신청할 수 있다.

 

 

김민주 기자 itz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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