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해진 무대에서도 공연은 계속된다
고요해진 무대에서도 공연은 계속된다
  • 김영현 기자
  • 승인 2020.05.31 1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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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곳 잃은 창작자들

극으로 소통 방식 실험해

공연의 영상화, 지켜봐야

  봄을 지나 따스해진 날씨와 달리 코로나19가 휩쓴 공연예술계는 여전히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국내 공연 매출액은 1월에서 2월 사이 절반으로 줄었고, 4월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태원 클럽발 감염 사태 이후로 다시 공연장을 찾으려던 관람객들도 등을 돌렸다.

  특히 소극장이 밀집한 대학로 일대는 직격탄을 맞았다. ‘구름빵’, ‘사랑은 비를 타고등의 스테디셀러 연극을 상연한 예술극장 나무와 물2월부터 모든 공연을 중단한 후 재정난을 버티지 못해 5월 초 철거를 시작했다. 종로 5가에 있던 종로예술극장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4월 말 운영을 중단했다.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예술극장의 한 출입문이 통제돼있다.

 

  2014년 초연 이후 오랫동안 대학로에서 사랑받았던 뮤지컬 음악에세이 그대와 영원히520, 공연 중단 소식을 밝혔다. 제작을 담당했던 극단 지우황기현 대표는 현 상황은 안타깝지만, 극단 사람들 모두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올해가 가기 전 꼭 다시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만 품고 있다고 전했다.

  2월부터 적자가 계속됐지만, 이번 달 공연 중단을 결정하기까지 극단 지우는 수많은 고민을 거쳤다. “관객 감소 폭이 절반에서 80% 이상 넘긴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죠. 저희 같은 소규모 제작사가 공연 하나를 모객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아요. 이미 홍보와 예매가 진행된 상황에서 쌓아온 인지도를 내려놓기가 힘들었습니다. 배우와 스태프의 갑작스러운 실직 문제도 큰 고려사항이었죠.”

  기획 공연 전문 소극장인 신촌극장의 전진모 대표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놨다. “공연하는 사람들은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에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과 관련한 프리-프로덕션부터 연습까지 수많은 단계를 거쳐 무대에 올라요. 공연을 미루거나 중단하기 어려운 이유죠.”

  2월 초 극단 지우는 공연 회차를 주당 7회에서 5회로 줄였고, 출연 배우들은 출연료를 인하했다. 극장주는 대관료 입금 날짜를 무기한 연기하고, 제작자는 당분간의 적자를 감수하기로 협의한 후 방역에 최선을 다하며 공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31번 확진자 사태 이후 관객 수와 매출액은 빠르게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5월 중순, 출연 배우 한 명이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음성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안전한 관람 환경을 보장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에 극단 지우는 결국 공연 중단을 결정했다.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했던 것은, 진심으로 무대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공연 목적이 그저 돈벌이였다면 아마 코로나 사태 직후 고민 없이 공연을 접었을 거예요.” 황기현 대표가 말했다.

  무대를 잃은 배우들은 다른 공연 활동을 이어가거나,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상황이다. 생계를 위협받은 건 기회를 모색하는 예비 배우도 마찬가지다.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 교수는 당장 학교에서 현장에 진출하려하는 배우들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뮤지컬 시장 특성상 주연은 이미 비공개로 확정된 상태에서 작은 배역을 두고 몇백 대 일의 오디션을 보는데, 지금은 이마저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 실험극 격리동물원

  많은 공연예술 극단이 공연을 중단하거나 연기하는 분위기 속에서 코로나19로 변화한 사회 풍경을 담은 실험극도 등장했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COVID19 긴급프로젝트[면역리허설]’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도를 꾀했다. 발길이 끊긴 극장과 관객의 위치를 공연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취지다.

  극단 성북동비둘기도 코로나19의 위협을 피해가진 못했다. 기존에 준비했던 연극 오 더 옐로우(oh the yellow)’ 상연은 3월에서 11월로 연기했다. 연기를 결정한 후 성북동비둘기에서 연출을 담당하는 김현탁 대표는 감염병의 위험이 도사리는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연극적인 시도를 고민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온다면 그때마다 쉴 것인지 고민해봤어요. 쉬는 건지, 사는 건지, 연극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 그 순간이 가장 무섭더라고요. 연극인으로서 스스로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죠. 완성도를 떠나 지금 시기에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실험을 마치 리허설 하는 것처럼 다양하게 해보자’, ‘한 번 망해보자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연극인으로서 스스로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죠." 극단 '성북동비둘기' 김현탁 대표가 ‘COVID19 긴급프로젝트 [면역리허설]’을 제작한 이유다.

 

  그렇게 기획된 ‘COVID19 긴급프로젝트 [면역리허설]’은 관객의 존재와 위치를 고민하고, 코로나19로 달라진 극적 소통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리허설 격리동물원은 관객 없는 객석과 마스크를 쓴 배우들로 실험적 구성을 갖췄다. 극이 시작할 때는 배우가 마스크를 쓰고 관객은 객석이 아닌 무대 측면에 앉는다. 중반부터 배우들이 마스크를 벗기도 하고 관객도 객석으로 이동한다. 변화 과정을 관객과 배우가 동시에 체험하며 마스크 쓴 상태에서 소통하는 법과 달라진 관객의 위치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반영해 새로운 형태의 실험극을 고안했지만,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할 수는 없다. 특히 마스크를 쓴 채 연기하는 배우들은 새로운 고민에 부딪힌다. ‘격리동물원에 출연하는 최하늘 배우는 배우는 표정과 눈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마스크 때문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들이 많이 가려진다고 말했다.

  김미옥 배우도 웃으며 덧붙였다. “관객들과 상대 배우가 제 목소리를 정확히 듣고 있을지도 의문이고, 저 역시 소리를 좀 더 크게 내야 하나, 천천히 말해야 하나 연기 중에 많은 고민이 들죠. 처음 해보는 경험이기 때문에 호흡이나 전달에 있어서 아주 답답해요. 하다못해 KF94를 쓸 것인가, KF80을 쓸 것인가, 80을 쓰고 숨을 좀 더 쉴 것인가, 94를 쓰고 그 답답함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공연 중간에 내릴 것인가 하는 등의 고민도 합니다.”

  곽영현 배우는 걱정과 동시에 의지를 드러냈다. “관객과 배우들 모두 만남에서 감염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어요. 불안함 속에서 만나는 과정 자체가 배우로서 굉장히 생경하고, 앞으로 공연을 하며 풀어가야 하는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격리동물원7일까지 창작공간 뚝섬플레이스에서 상연된다.

 

‘격리동물원’을 연습하는 배우들. 마스크를 썼다 벗고, 빈 객석에서 연기하기도 한다

 

 

  공연, 일상인가 유흥인가

  지난달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내린 국공립극장 운영중단 조치로 공연계는 다시 한번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등으로 온라인 상연을 하는 공연도 많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최승연 교수는 현재까지 많은 인기 뮤지컬들이 온라인으로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단순히 중계만 하는 형식은 공연이라고 보기 힘들다영화적인 문법을 도입하는 등 공연과 영상을 결합한 새로운 상연 방식을 고민해야 계속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탁 대표도 나 역시 영상을 고민할 정도로 현재 공연계 흐름이 변하는 상황이라며 그렇지만 오히려 연극과 영상의 경계를 확연히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배우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연극배우가 영상으로 송출되면 영화배우 개런티를 받아야 하는지, 회당 혹은 촬영 횟수로 페이를 받아야 하는지 묻기도 해요. 아무리 좋은 기술로 잘 찍어낸 연극이라도, 공연장에서 보는 연극과 영화를 따라갈 수 없다면 자연스럽게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까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이번 공연계의 위기는 삶에서 공연이 수행하는 역할과 위치를 묻는다. 신촌극장 전진모 대표는 우리가 문화예술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업이나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유흥거리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묻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상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대화하는 카페나 식당을 닫으라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보는 극장은 닫아야 된다는 생각이 좀 이상하게 느껴져요.”

 

신촌극장 전진모 대표는 “공연도 누군가의 업이자 일상”이라고 했다.

 

  김현탁 대표도 연극과의 단절만이 방법은 아니라고 했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연애하고 밥 먹을 땐데, 밥 먹고 식당을 나오는 순간 마스크를 쓰는 행위가 참 연극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해요. 공연장은 왜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는지 면역리허설을 통해 묻고 싶어요. 공연장을 노래방 같은 유흥시설과 동일한 선상에서 고려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가 가져온 갑작스러운 위기 속에서도 공연예술인들은 여전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김현탁 대표는 연극 활동을 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안고 있었다크게 나아진 것도 나빠진 것도 없다고 했다. ‘면역리허설프로젝트에서 드라마터그를 맡은 황동우(영문학과 05학번) 교우가 옆에서 덧붙였다. “잃을 게 있어야 힘들어지니까요. 오히려 코로나19 이후로 국가로부터 소독제 비치했냐는 문자도 받고, 이런 작은 관심들이 낯설기도 하지만 기분 좋게 느껴지네요. 코로나19가 끝난다고 해서 연극계에 주는 관심이 줄지 않았으면, 이번 위기가 변곡점이 됐으면 해요(웃음).”

 

김영현 기자 carol@

사진두경빈 기자 hayab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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