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 함께 활동하던 시사 동아리 친구들과 위안부 캠페인을 진행했다. 자료를 조사하고, 피켓을 만들고, 위안부 굿즈를 공동구매했다. 용돈이 궁한 학생들의 캠페인이라도 소녀상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말에 하드보드지로 소녀상 등신대도 만들었다. 나는 자료조사를 맡았는데 덕택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애달픈 사연을, 그리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짓밟는 극우 세력의 주장을 분노를 참으며 들어야 했다.

 정의기억연대 관련 보도가 쏟아지던 때, 마침 2주간 모교에 교생으로 가 있었다. 7년 전, 내가 위안부 캠페인을 벌이며 피켓을 들던 그곳에 말이다. 7년 후의 정문 앞엔 학생들의 모금으로 번듯한 소녀상이 서 있었다. “영원히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란 글귀가 적힌.

 출근할 때마다 보는 소녀상의 얼굴은 점점 애달파졌다.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 이제 소녀상의 곁에만 있을 뿐 위안부 할머니의 곁에는 없다. 소녀상의 뒤편에 숨어서 피해자의 호소를 묵살한다.

 ‘정신이 오락가락한 할머니들이, 반일 감정을 조장하려는 세력을 등에 업고, 일본 정부의 돈을 뜯으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다7년 전에 들었던 극우 세력의 주장과 자칭 윤미향 수호대가 말하는 기억 왜곡설, 할머니 매수설, 배후설은 너무나 비슷했다. 내가 치를 떨며 조사했던 일본의 논리를 이제 자칭 위안부 운동가들이 그대로 써먹는다.

 슬픔은 점차 의문으로 바뀌었다. 저들이 지키려는 소녀상의 소녀는 누구일까. 우리가 지갑을 털어 소녀상을 세우고 목도리와 모자, 털장갑을 신겨주는 동안, 진짜 소녀는 추운 겨울을 온수 매트 한 장 없이 보내야 했다.

 소녀는 말을 하지만 소녀상은 말을 하지 못 한다. 우리가 들어야 할 목소리는, 지켜야 할 사람은 소녀상 뒤편의 사람들이 아니라 슬픔 속에 살아계시는 소녀들이다. 소녀상을 세우고 지키는데 쏟은 마음을 나눠 소녀들을 위해 써야 한다. 상징을 만들고 기리는 일은 그분들이 떠난 후에도 늦지 않다.

 

김보성 기자 green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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