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의 위기론이 심상치 않다. 인구절벽으로 인한 대학입학자의 감소로 대학 줄도산이 점쳐지고, 지능정보화 시대에 대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위기감은 우려를 넘어섰다. 대학 졸업장은 더 이상 더 좋은 지위 획득의 수단으로 작용하는 계층사다리의 기능을 걷어찬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다. 대학설립준칙주의에 의한 대학설립의 남발은 우리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대학 간 경쟁을 통한 질 제고대신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구조개혁을 통해 의도되지 않은 의도적인 정리로 해석되고 있다. 정부의 법규 적용과 재정지원 연계에 의한 통제중심의 대학정책은 실행과정에서 디커플링과 세계의 대학들이 겪는 문제의 리커플링을 고스란히 가져와 대학에 이중적인 부담을 안겨주었다.

 싫든 좋든 우리의 대학이 근대사를 통해 발전해온 경로는 고유의 대학 문화와 정책 문화 그리고 대학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정서를 구축해왔다. 국민 개인에게 있어 대학은 입신양명의 교두보이자 교육열의 종착지이다. 학력과 학벌은 계층사다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정부에게 있어서 대학은 국가 경쟁력 제고의 보루이기 때문에 국가라는 이름으로 경제발전을 위한 인력양성과 훈련기관으로 계획되고 통제되어 왔다. 통제의 수단이 정치적 권위에서 경제적 수단으로 바뀌었을 뿐 계획 통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의 욕구와 국가의 요구 사이에서 대학은 얼마나 대학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고 기대에 부응해왔는가? 정부 권력과 자본에 의해 포획되어 대학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관립대학화 되어가는 현실을 언제까지 한탄만 할 것인가? 대학이 고유의 문화와 수월적 가치를 구축하지 못하고 환경에 순치화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무력감과 자기파괴적 정체성의 상실이 바로 위기의 본질이다.

 사실 현대 대학의 위기론은 세계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위기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대학이 어떻게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면서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지능정보사회의 출현으로 인한 대격변과 뉴노멀의 등장과 함께 선진형 대학들은 대학의 본질적 가치에서부터 존재 방식에 이르기까지 선제적이고 과감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미국 스탠포드(Stanford) 대학은 디자인 스쿨(Design School)을 통해 인간중심, 다학제적 관점에서 미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창의적 교육방법으로서 디자인 싱킹을 채택하고 대학-기업 프로젝트 기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애리조나(Arizona) 주립대학은 주립대학의 본분에 맞게 교육기회를 개방하고 유연한 학사운영과 적응적 학습(Adaptive Learning) 등 교육방법의 혁신을 통해 성과를 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과 독일의 뮌헨공대는 대학에 메이커 스페이스 같은 혁신창업공간을 통해 실용적 분야의 교육과 연구가 현실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위기에 직면한 대학들의 바람직한 본보기로 거론되고 있는 이 대학들은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이름이고, 성공의 어머니라는 경구를 주도적으로 실천한 경우이다. 성공한 대학들은 공통적으로 스스로가 변화의 중심이자 주체라는 자각이 있었으며, 대학 본연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고자 노력하였다. 적응의 방향은 대학의 발전경로에 따라 축적된 문화적 특성과 역량에 따라 포지셔닝 되었다. 대학의 특성과 역량에 따라 할 수 있는 것과 하기 힘든 것의 구별이 필요하듯이 대학의 성격에 따른 발전전략의 차별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성공하는 대학들은 대학의 전통적 이상과 이념을 현실과 탈착된 격리된 공간의 유물로 남겨두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에서도 그것이 여전히 유효함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였다. 교육목표는 시대가 요청하는 다학제적 교육과정과 프로젝트 중심의 PBL 등 다양한 교육방법의 혁신으로 실천되고, 실천적 공간에서 현장의 성과로 재현되었다.

 서구의 성공한 대학 모델이 갖는 공통점을 우리의 대학들이 처한 현실과 맥락을 도외시한 채 무조건적으로 차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해외 성공사례가 보여주는 혁신의 흐름과 방향을 읽어야 하고, 그것을 우리의 맥락에서 재개념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체는 대학 스스로 신뢰를 세워 자율성을 되찾고, 다양성의 조장을 통해 사고의 폭과 시스템의 유연함을 갖추며, 허용적인 개방성을 통해 공존과 공영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위기는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징조이면서 낡은 것을 바꾸거나 아주 새롭게 하는 혁신의 출발점이다.

신현석 본교 교수·교육학과
신현석
본교 교수·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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