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컴백흠
[냉전] 컴백흠
  • 고대신문
  • 승인 2020.06.0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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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상 칭찬보다 남의 흠을 적는 일이 많다. 오늘은 대기업 총수 부부의 이혼 소송을 살펴보러 법원에 갔다. 당사자 모두 나오지 않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파탄 난 재벌가 부부 재판의 첫 문장은 어떻게 써야 읽힐만한가였다. 무심히 마침표를 찍은 뒤에는 고상할 리 없는 나의 세상으로 경박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내 방의 바닥을 보았다. 미간에 다시 주름이 생긴다. 어제 방바닥에 흠집이 났다. 물건 하나를 떨어뜨렸는데 찰흙에 손톱 찍힌 듯 파였다. 몇 안 되는 내 방의 매력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소중한 것들은 모두 흠이 생긴다. CD는 긁히고 테이프는 늘어난다. 아이팟과 아이폰, 심지어 맥북도 얼마 안 가 긁히고 어딘가 찍힌다. 완전무결함을 원한다면 물건을 쓰지 않거나 본래의 생김새를 잊게 하는 케이스를 둘러야 한다. 그래도 물건은 쓰다 보면 상한다.

 얼마 전 마련한 이 방도 그렇다. 내부 공간에 어울리는 나무 쓰레기통 하나를 사는 데 서울에서 몇 시간을 투자했다. 같은 제품 중에서도 무늬가 좀 더 예쁜 것을 골라 전철에서 한 시간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집에 가기 전 들른 대형 마트 한가운데서 이 신줏단지를 떨어뜨렸다. 애써 고른 뚜껑 가장자리에 금이 갔다. 지금은 신경 쓰지 않는다.

 세상의 좋은 것들은 상처를 못 피한다. 한철 피어나는 꽃은 꺾이기를 각오하고 얼굴을 편다. 수십 년을 살아온 나 역시 이 방보다 훨씬 많은 상처에 꺾이고 아물었다. 나의 자존심은 좋아하지 않는 아이의 뽀뽀를 거부하고 한 대 맞은 유치원 시절부터 박살이 났다. 학창 시절에는 내가 원한 내 모습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럽게 울었다. 20대 연애 시절에는 엄연한 귀천의 현실에 식음을 전폐했다. 30대 직장 생활은 총성 없는 시가전이다. 창피한 순간은 불현듯 찾아온다. 잊고 싶은 실수들, 창피한 잘못들, 나 자신조차 속이고 싶은 비밀들.

 가장 소중한 나 자신조차도 이렇게 흠이 많은데, 나무 바닥에 무결함을 기대하는 건 처음부터 지나친 욕심이었다. 앞으로도 이 집안 곳곳은 크고 작은 흠으로 채워질 것이다. 다만 주말 아침 닦아낸 바닥의 반들반들함이 이 모든 상처를 잊게 해주리라.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 컴백홈가사를 주문처럼 읊어본다. “난 지금 무엇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그래서 나의 퇴근은 컴백홈이 아니다. 흠결 많은 나를 편히 마주하는 곳. 컴백흠이다.

<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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