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신문을 읽고] 기자 칼럼은 현장성이 답이다
[고대신문을 읽고] 기자 칼럼은 현장성이 답이다
  • 고대신문
  • 승인 2020.06.0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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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2호 고대신문은 칼럼의 스타일이 명확히 나뉘는 신문이었다. 10종단횡단-학교 정문 앞 작은 소녀상수레바퀴-진정한 공정을 말하기 위해선은 같은 지면에 같은 고대신문 기자들이라고 하지만 칼럼 스타일이 전혀 다르게 게재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럼의 주제와 구성을 떠나 접근방식에서 종단횡단이 보다 뛰어났다. 기자들의 칼럼은 현장성이 생명이다. 뜬구름 잡는 식의 접근은 독자로 하여금 실소를 띄게 만든다. 독자들을 가르치려 덤벼서도 안 된다. 표면적으로밖에 알 수 없는 독자들을 향해 기자가 있었던 현장은 어떤 상황이었고, 이런저런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게 훌륭한 칼럼이다.

  석학이나 대학자가 쓰는 칼럼이 아닌 이상 거대담론을 원고지 5매 정도에 담을 수 있는 능력은 단언컨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칼럼을 쓸 때는 항상 겸손하게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은 감정을 논리정연하게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런 측면에서 수레바퀴는 데스크 칼럼이라고 높게 봐주더라도 지나친 면이 있다. 무엇 때문에 갑자기 비례와 평등을 논하는지 칼럼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주지 않고 있다.

  칼럼을 쓸 때는 늘 겸손해야 한다. 독자들은 기자보다 더 뛰어나다. 그럼에도 칼럼을 보는 이유는 살아 있는 현장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 기자 칼럼은 현장이 담겨야 한다.

  사설도 짚고 넘어 가보자.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의 주장을 옹호하는가 싶다가 어느새 서로 양보하라고, 그게 좋은 의회정치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성언론 어느 사설을 옮겨다 붙인 것 같은 사설을 대학언론 지면에서 보고 싶어 하는 독자는 없을 테다. 아카데믹한 근거를 들어 주장을 폈다면 기성 언론들이 숨죽여 봤을 사설이 됐을 것이다. 미국 의회의 상원 구성과 그 배경, 우리보다 오래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서구의 사례를 근거로 주장을 폈다면 하는 아쉬움이 깊다.

  사설은 어느 칼럼에 빗댈 수 없는 신문의 얼굴이다. 어느 하루 저녁에 급하게 소재와 주제를 잡아 기존에 나온 보도내용을 우라까이할 성질이 아니다. 한 주간 주요 이슈를 숙고해서 아카데믹하게 풀어내 전국 대학신문들과 일합을 붙는 대표 격인 코너다. 자신이 없으면 사설을 없애는 게 낫다. 기성 언론도 사설을 없앤 경우가 종종 있다. 사설이 엉망이면 신문사의 밑천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기 때문이다. 이번 사설을 작성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여러 차례 지적했던 인터뷰 기사의 형식을 다양하게 시도했다는 점에서 기쁘다. 조언이 잔소리로 들리면 발전이 없지만, 뼈에 새기면 발전하는 조직이 된다. 한 학기 동안 고생한 기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송종호(서울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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