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의 시선] 청춘의 기습
[고대인의 시선] 청춘의 기습
  • 고대신문
  • 승인 2020.06.0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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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기습

      이병률

그런 적 있을 것입니다

버스에서 누군가 귤 하나를 막 깠을 때

이내 사방이 가득 채워지고 마는

 

누군가에게라도 벅찬 아침은 있었을 것입니다

열자마자 쏟아져서 마치 바닥에 부어놓은 것처럼

마음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버릴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주머니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계산하는 밤은 고역이에요

인생의 심줄은 몇몇의 추운 새벽으로 단단해집니다

 

넘어야겠다는 마음은 있습니까

저절로 익어 떨어뜨려야겠다는 질문이 하나쯤은 있습니까

 

돌아볼 것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부리로 쪼아서 거침없이 하늘에 내던진 새가

어쩌면 전생의 자신이었습니다

 

누구나 미래를 빌릴 수는 없지만

과거를 갚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드라이클리닝 한 밤색 코트를 옷장 깊숙이 넣어버릴 때쯤 나를 사랑한다는 남자가 나타났다. 아끼던 초록색 반팔을 꺼내 입어야지, 할 때쯤 그는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떠났다. 봄이 우르르 쏟아졌다. 나는 그 위로 속절없이 엎어졌다. 계절의 기습을 막아낼 수 있는 어른은 되지 못해서, 나는 까진 무릎을 쓰다듬으며 울먹이는 날들을 지냈다. 이 시의 문장들은 그런 요즘의 나를 쓰다듬고, 혼내고, 재우고, 깨우는 듯하다.

  청춘이 뭐길래? 사랑이 전부는 아닐 거 아냐, 라고 생각하다가도 나는 청춘에 대해 쓰며 나를 사랑했고 내가 사랑했었던 사람들의 향기를 떠올린다. 그는 민트, 라벤더, 샌달우드. 시 속의 표현들이 마음에 꼭 와닿는다.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나의 모든 빈틈이 그의 향기로 채워졌다. 그것은 아주 벅차고 겁나지만, 거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닥에 엎질러진 마음을 마치 나의 것이 아닌 듯 가만히 응시하는 일이 새로운 아침 일과가 되었다. 날이 지날수록 나는 나와 서먹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갔지만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은 짜릿했다. 사랑의 기습에 명치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것은 청춘의 명백한 증거이다.

  추운 새벽이 오면 나는 물음표의 꼭지를 잡고 밤을 이리저리 부유한다. 사람이 떠나고 기억이 얼룩지기 시작하면 사랑도 휘발되어 사라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에서-달의 뒷면이라든가, 혹은 내 침대 밑?-겁먹은 고양이처럼 웅크려있을까? 순간의 진심은 거짓일까? 지난 계절의 나를 돌아보며 나는 물기를 머금으면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나의 역사를 붙잡고 발길질을 해대면서 내일의 나로부턴 따듯한 포옹을 바라는 것은 청춘의 괴로운 증거이다.

장한나(문과대 철학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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