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준
제주대 교수·사회교육과

 

  홍콩보안법은 송환법 반대와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로 전개된 2019년 홍콩시위의 연장선 상에 있다. 1997년 홍콩 반환 후 홍콩의 자치와 민주주의 보장을 요구하는 일련의 정치적 저항에 직면해 왔던 중국 정부는 20205월 홍콩 내 반정부 활동을 처벌할 수 있는 보안법의 도입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시킴으로써 홍콩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홍콩문제는 중국 내 다른 소수민족의 자치와 독립 문제, 대만과의 일국양제에 기반한 통일 문제 등 중국이 직면한 정치적 통합성의 과제와도 결부되어 있다.

  국제적 차원에서 홍콩보안법은 인권과 주권 사이의 규범 충돌을 보여주고 있으며, 중국 내 인권문제를 비판하는 미국과 내정불간섭의 주권원리를 주장하는 중국 사이의 외교적 충돌로 발현되고 있다. 홍콩사태와 미-중 갈등은 권위주의적 슈퍼파워의 등장이 국제사회에 제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국제사회는 홍콩에 대한 중국의 비민주적 접근법이 향후 국제관계에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권위주의 통치를 시행하면서 국제사회의 국가 간 평등과 세계시민의 자유를 과연 중국이 지켜나갈 것인가라는 의문과 우려가 홍콩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에 깔려있다.

  홍콩보안법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표면상 민주주의 가치의 수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중국을 압박할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국익과도 관련되어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홍콩보안법에 대한 비판은 가치와 이익 사이의 극적인 모순과 충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를 철폐하는 것은 홍콩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중국이 홍콩을 정치적으로 억압하고 있다면 미국은 홍콩을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셈이며, 중국과 미국의 충돌 속에서 희생은 중국과 세계경제의 가교 역할을 하던 홍콩이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희생은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로까지 파급되고 있다.

  한국은 홍콩보안법 사태와 미-중 갈등으로 인해 민주주의와 국익 사이의 충돌이 발생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미국과 소련이 충돌하던 냉전 시기는 가치와 이익이 함께 결합되어 있었고 냉전의 주요 전장은 국가간 경계선이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미-중 갈등은 이와 다르다.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은 중국정부의 홍콩보안법 제정을 비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중요성은 중국과의 정치적 갈등이 초래할 경제적 보복과 피해를 우려하도록 만든다. 세계화된 환경속에서 진행되는 미-중 갈등은 가치와 이익이 상충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이 싸움의 전장은 우리 영토 내부와 세계 곳곳이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지는 많지 않다. 홍콩문제에 침묵하며 미중 갈등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보이는 것은 사실상 중국 정부를 지지하는 것이며, 우리가 이룩한 민주주의 성과를 바탕으로 책임 있는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시도는 향후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실리외교를 펼치려 해도 중국의 홍콩정책을 비판하며 미국과 공조하는 것이 가져올 안보적 이익과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가 제공하는 경제적 이익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홍콩사태는 우리 외교가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국제사회에 표명하고 국제적 이슈를 원칙에 따라 접근하는 규범외교를 모색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외교정책이 몇몇 정책결정자들의 선호와 판단이 아닌 국민적 요구를 반영한 정책이고, 민주주의 국가로서 우리 정부가 시민적 요구를 반영한 외교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규범 외교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외교정책이 지향하는 가치와 방향에 대한 국내적 합의 노력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한국이 민주적 가치와 과정에 충실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내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웃 국가들의 문제에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는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외교정책은 가장 좋은 국내정치의 실현 위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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