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훈 미디어학부 교수

 

  필자는 지난 322일 자 이 지면에서 후대 역사가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 시대로 현대사를 구분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불과 두 달이 지난 지금, 이를 아니라고 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코로나 덕분에를 이야기한다. 모두 코로나가 만들어낸 일상의 위기와 또 다른 기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코로나가 야기한 우리 경제와 사회 제반 분야의 변화와 예측에 대한 담론도 무성하다. 코로나라는 블랙홀이 우리 일상을 통째 삼켜 버리는 엄청난 변화의 추이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이즈음 우리의 관심이 대변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임기응변 노하우의 공유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완전한 회복과 건강한 새 출발을 위한 근본적인 문제 발견, 그리고 신중하고 치밀한 해결방안의 제시가 필요하다. 눈앞의 생존 전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당면한 사안의 본질에 대한 차분한 분석과 진단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시점에 대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다시 거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이 존립하는 목적은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고 이를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젊은 인재를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길로 이끌어 주는 것이 대학의 목적 자체여서는 안 된다. 대학의 궁극적 목적은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미래를 열어 주는 지식을 만들고, 그 미래를 이끌어 주는 인재를 키우는 데 있다. 인류 공동체의 미래가 견고히 세워진다면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미래는 당연히 보장되기 때문이다. 고려대학의 전신인 보성전문이 일제하 암울했던 시절 교육구국(敎育救國)을 이야기했고, 보성전문을 인수한 인촌(人村)이 공선사후(公先私後)를 이야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인의 자유는 더없이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공공의 선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보는 공동체적 자유주의가 갖는 공공 철학적 함의를 잘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에서 인간의 노동(labour), 창의적 작업(work), 사회적 활동(action)을 구별해 설명했다. 아렌트에 의하면 인간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작업 영역이 생존을 위한 노동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사회적 활동이다. 아렌트는 이를 실천적 삶(Vita Activa)’이라고 부른다. 아렌트의 실천적 삶의 개념을 너무 거창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코로나가 창궐한 시기에 대구 동산병원까지 한걸음에 달려간 의사와 간호사, 감염 경로를 시시각각 업데이트하는 무료 앱을 개발한 대학생만 실천적 삶의 사회적 활동을 한 것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철저한 마스크 착용, 물리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는 생활습관의 준수도 공동체를 수호하는 선한 시민의식에서 시작했다면 이미 훌륭한 실천적 삶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대학은 다양한 층위의 실천적 삶을 준비하는 곳이어야 한다. MIT 미디어랩 설립자인 제리 위스너(Jerry Wiesner)30년 전 언급한 희망을 다시 한 번 인용하고자 한다. 위스너는 미디어랩에서의 새로운 과학 실험과 연구의 목적이 시장에서 각광받는 상품을 개발해 큰 수익을 창출하는 것에 있지 않다고 단호히 이야기했다. MIT 미디어랩은 인간의 삶을 더욱 안전하고, 건강하고, 공정하고,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한 테크놀로지의 개발과 보급이라는, 한 차원 위의 실천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시작됐다. 과학기술의 비즈니스 모델 그 자체가 본연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다만 실천적 정신의 진지한 연구에 당연히 따라온 성과였을 뿐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MIT 미디어랩은 꾸준히 세상의 혁신을 이끌어 왔다. 대학은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곳이다. 젊은 이들은 대학에서 이런 꿈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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