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 이상 문학전집1 : 시> 이상

 

  매우 구태의연한 감상이겠지만 그가 창작한 모든 종류의 문학에서, 그는 그 자체로 어딘가 아파 보인다. 이는 일상적인 독해의 난해함과는 다른 종류의 결손이었다. 특히 그의 시는 의도적인 분절과 회복을 거부하는 듯한 완고함이 어려 있다. 이는 어떻게 보아도 불운했던 그의 생애와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의 운명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찾아가 스스로 스며들게 하는 강한 인력을 가지는 듯하다. 그만큼 이상은 어딘가 망가져 있었다. 그의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시작부터 난항에 봉착하는 듯하다.

  첫 번째 시부터 알아보자. 가역반응이란 무엇인가. 이는 화학반응에 있어, 반응계에서 생성계로 향하는 정반응이 진행하는 것과 동시에 생성계에서 반응계로 향하는 역반응도 무시할 수 없을 속도로 일어나는 경우’(화학용어사전, 일진사)라고 한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간추리자면 어떠한 반응이 결과를 내지 못하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로 이해가 가능하다. 그야말로 고집스러운 결언이다.

  어떤 상태로 돌아오려고 하는 것일까? 원으로 표상되는 어떤 테두리 안과 밖의 연결 그것을 죽음으로 볼 수 있는가는 질문-‘원내의일점과원외의일점을결부한직선/이종류의존재의시간적경향성(우리들은이것에관하여무관심하다)//직선은원을살해하였는가’. 그리고 인공과 자연을 동일 선상으로 놓는 현미경의 존재-‘현미경/그밑에있어서는인공도자연과다름없이현상되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바아의 나열이나 육체에 대한 처분법따위는 도저히 이해할 방법이 없지만 적어도 내부와 외부, 인공과 자연과 같은 대립되는 두 항의 연결을 가역반응으로 보았고 이를 관측하는 시인 역시도 아니하면 아니 될 어떤 것도 하지 아니한듯한 고착상태의 일면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것은 분명 발달하지도 아니하고 발전하지도 아니한어떤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가역반응은 일반적인 시적 진술이라기보다 집요한 주장에 가까운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그것은 가역반응이라는 현상이 가지는 필연적인 이항 대립적 특성이 빚어내는 인상이라고 생각되는데 이상의 세계관은 가역반응을 통해 하나로 연결하려고 한다기보다 그저 분열을 통한 불편함에서 멈추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일례로 <거울>에서는 거울을 통해 분리된 시적 자아가 등장하는데 구태여 가역반응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단순한 분리된 자아를 감각하고 이를 통해 비감을 느끼는데 그치는 시적 진술은 어딘지 모르게 싱겁고 섭섭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로 인해 내게 이상은 아직까지 <거울> 속 분절된 자아에서 멈춰있는 상태에서 그친다. 물론 가역반응이라는 과학적 은유를 통해 분절된 시인의 세계관을 설득시키고 특별한 성과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는 생각하나, 그것은 잘 맞은 은유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려는 자세라기보다 진실을 은유에 끼워 맞춰 시인의 상태를 고착시키려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허나 시각을 달리하자면 이도 일종의 가역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분절된 상태의 시인이 외부와의 상호작용과 동시에 변화를 거부하고 다시 분절된 상태로 되돌아가려 함. 그야말로 이상한 가역반응이다.

심동욱(대학원 석사과정·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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