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켜서 하나, 내가 좋아서 하지
누가 시켜서 하나, 내가 좋아서 하지
  • 이승은·이현주·조민호 기자
  • 승인 2020.06.08 0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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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대표자 10인 인터뷰

각자의 이유로 시작한 대표자

코로나로 취소·중단 공지만

“부원들아, 고맙고 미안해”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번듯한 스펙이 되는 것도 아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자기 시간 쪼개가며 열과 성을 다해 일한다. 동아리 대표자 이야기다. 순전히 동아리에 대한 애정을 연료 삼아 자신들의 열정을 불태운다. 코로나19라는 엄청난 악재로, 동아리의 존속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대표자 10 명을 만나 봤다.

회장이 부르네, 때가 됐구나

  잠깐, 동아리 회장을 맡기 전 편했던 그때로 돌아가 보자. 갑자기 동아리 회장에게 밥 먹자는 연락이 온다. 불안감이 엄습한다. 주변에서 회장 생각이 없냐는 압박 섞인 권유를 몇 차례 받은 바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비껴가지 않았다. 밥은 핑계였고, 회장 자리를 맡아달라고 제의하는 자리였다. 이상현 한일문화연구회 회장은 동아리에 가입한지 오래되기도 했고, 다들 한 번씩 회장을 맡아서 이번엔 내가 회장이 되리란 걸 직감했다고 말했다.

김선민 The Granite Tower 편집국장, "한 학기밖에 못 하는 편집국장인데, 하필이면 코로나19랑 겹쳐서 많이 아쉽네요."

  활동 학기나 기수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황신영 KUAAA 회장은 천문회에 들어간 지 1학기 만에 회장으로 영전했다. 재벌 3세 급 초고속승진이다. 황신영 회장은 당시 19학번 중에서 나만큼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한 사람이 없어서 반강제로 회장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고 했다. 김선민 The Granite Tower 편집국장의 경우도 파격 그자체였다. 보통 한 학기가 지날 때마다 수습기자-부기자-정기자-부장-편집국장순으로 진급하는데, 선배들과 동기들이 다 떠나면서 한순간에 동아리에서 가장 이 높아졌다. 자연스레 부장을 건너뛰고 편집국장을 맡게 됐다.

  동아리가 너무 좋아 당장의 졸업장까지 포기한 경우도 있다. 나예진 KUDT 회장은 동아리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졸업을 앞두고 휴학했다. “졸업 후 사회에 나가면 더는 춤에 열중할 수 없을 것 같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대표직을 맡기로 결심했다고 나예진 회장은 말했다.

나예진 KUDT 회장, "부원들에게 매번 싫은 소리만 해서 미안합니다. 그럼에도 믿고 따라와 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가 이러려고 대표를 했나

  치솟는 자신감으로 시작한 대표자 생활이지만 코로나19는 방학부터 동아리 활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취소와 중단. 이번 학기 대표자들이 부원들에게 가장 많이 전한 소식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겨우내 고심하며 세운 계획들은 대부분 물거품이 됐다. 장성관 서화회 회장은 “5월에 계획해뒀던 활동들을 취소해야만 했을 때 진이 다 빠져버렸다고 했다. 대표자에겐 좌절도 사치다. 마음으로 피눈물을 흘려도, 겉으로는 아무 일 아닌 양 굳건한 체하며 의욕을 상실한 부원들을 다독여야 했다.

  코로나19가 터졌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만 있을 순 없는 법. 활동계획을 전면 수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백지부터 시작이었다. 어떻게 온라인으로 기존 활동을 이어나갈지 고민하느라 밤새 회의만 거듭했다. 이태경 운화회 회장은 인수·인계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미리 짜뒀던 계획을 전부 취소하고 새로 대안을 찾느라 세 달간 정말 정신없는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OT, 세미나, 공부방처럼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활동만 간간이 유지하고 있다.

  유독 버거워진 동아리 활동이지만, 군말 없이 참여해주는 부원들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다. 가끔 부원들이 진지하게 동아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낼 때면 그보다 더 뿌듯할 수가 없다. 대표자이기에 해야만 했던 잔소리와 크고 작은 실수는 고스란히 부원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귀결된다. 성지민 관현악단 부회장은 같이 따라와 준 부원들이 정말 고맙고, 부족한 모습을 자주 보여 미안하다고 전했다.

난 힘들 때 108배를 해

  당장의 급한 불은 껐는데, 학교에 여전히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으면 동아리는 사라진다. 절박한 마음에 대표자들은 신입부원을 찾으러 에브리타임으로, 고파스로 떠나야만 했다. 신입 모집 홍보도 어려운데, 업무도 같이 진행하려니 튼튼했던 몸도 말을 듣지 않았다. 왜 내 몸은 하나일까. 육경수 녹두울림 회장은 내가 포기하면 누가 책임지겠느냐 생각하며 묵묵히 버텼다고 했다.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 근데 그들에게 완전한 힐링을 주는 것도 동아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기에, 안락한 동아리방에서 숨을 고르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저는 힘들 때 명상이나 108배를 해요. 108배를 하다보면 회장 일로 쌓인 번뇌들이 싹 잊힙니다.” 이우경 원불교 학생회 회장이 말했다.

  나예진 회장은 아침 일찍 학생회관에서 앰프로 음악을 크게 틀고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춤을 춘다. “동아리 운영이 고달파서 그렇지 춤이 잘못은 아니니까요.” 장성관 회장은 동아리방에서 그림을 그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롯이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렸어요.”

  모든 동아리 대표자들이 생각한다. 코로나만 끝나봐라. 코로나19가 진정되고 정상적으로 재개된 동아리 활동을 고대하며 어느 때보다 대표자들의 의욕은 불타오르고 있다. 취소됐던 행사, 뒤풀이, MT, 친목 활동까지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못 한 만큼 하리라. 그때까지 바라는 건 부원들도 지치지 않는 것. “부족한 점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늘 응원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우리 부원들이 동아리 애정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빨리 축구하자!” 임희진 FC엘리제 주장이 말했다.

임희진 FC엘리제 주장, "부원들과 즐겁게 축구할 때가 가장 보람찬 순간입니다!"

 

| 이승은·이현주·조민호 기자 press@

사진 | 양가위·배수빈 기자 press@

사진제공 | 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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