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개학이다. 3월의 주인공인 새내기들에게는 고대생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의 하나로서 막걸리 사발식이 기다리고 있다. 단순히 커다란 사발에 부어 놓은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별로 아름답지 못한 전주와 함께, 또 이제는 그 가사의 현실성에 일말의 회의조차 가질 수도 있는, 막걸리찬가의 독려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신다.

신입생의 입장에서는 막걸리찬가가 곁들여진 사발식이 어쩌면 자신이 고대생이 되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 시간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대면한 막걸리찬가는 4년 내내, 또 평생 자신과 함께 한다. 그러나 막걸리찬가는 일견 문제가 많은 노래이기도 하다.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를 마셔라…. 부어라 마셔라 막걸리, 취하도록,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막걸리를 사내답게 마셔야 한다는 것은 다분히 성적 편견이 개재돼 있는 발상이다. 물론 무엇이 사내다운 것인지 정의하기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술을 마심에 있어서 청탁불문과 두주불사에, 많은 양의 술을 단숨에 마시는 등의 호방함이 사내다움의 상정이라면, 우리의 음주문화에서 사내다움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여기에서 일단 하나의 문제가 제기되지만, 이것은 시대의 흐름과 문화의 변천 탓이라 치부해 두기로 하자. 그런데 논리의 측면에서 볼 때, ‘사내답게’ 막걸리를 마시겠다는 사람이 왜 ‘마실까 말까 마실까 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육두문자가 동원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막걸리를 마시는지 나로서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쓸 데 없이 붙은 전주로 인하여 우리의 막걸리찬가가 도입부부터 모순을 노정하고 있다. 아무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다. 논리적 모순의 배제를 위해, 막걸리찬가의 찬가다움을 위해, 그 전주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아울러 현실적 음주 행태에서 본다면 우리 학생들은 사실 막걸리보다는 맥주를 선호한다. 그러니 막걸리가 ‘취하도록 너도 먹고 나도 먹고’ 하는 애음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유대를 강조하고자 할 때는 여전히 막걸리찬가가 등장한다. 평소 즐겨 찾는 술도 아니면서 여전히 찬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막걸리찬가만이 갖는 불가사의한 생명력이다. 몇 가지 이유 때문에 나는 막걸리찬가가 본교의 노래일 수 있는가 하는 회의를 품어본 적이 있다.

그러다가 금방 나의 생각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아무리 ‘사내답게’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이 화석화되고 박제화된 풍경이라 해도, 막걸리찬가는 우리의 가슴 속에서 항상 살아 숨쉬는 우리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들어도 들어도 가슴 깊은 곳에서, 기억 저 먼 곳에서 무엇인가의 진한 아련함과 함께 새로움이 솟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 노래는 우리가 막걸리 애음 여부를 떠나 우리의 상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징으로서의 막걸리. 막걸리는 의문의 여지없는 한국의 전통 민속주이다. 먹을 것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 선조께서 음주와 포만의 욕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던 수단이었다. 가난하고 암울했던 시절, 시대의 고민을 껴안고 살아야 했던 우리 선배들께서 선택의 여지없이 들이켜야 했던 목적이었다.

개교 1백주년을 눈앞에 둔 본교는 근현대사의 우리 민족과 함께 성장하면서 민족의 혼을 일깨워 왔다. 또 대한민국 사회의 초석과 기둥임을 자임하면서, 지금도 우리는 스스로를 민족고대라 자칭하고 있다. 막걸리가 우리 민족 술의 대명사라면, 본교는 한국 대학의 대명사이다. 그러니 막걸리가 본교의 술일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아! 고려대학교’가 막걸리대학교인가 보다.

여러 여건 상 자주 기회를 가질 수는 없지만, 나는 한 학기에 한 번 정도는 우리 학과 학생들의 사발식 현장에 동석한다. 그 경우 신입·진입 ·편입·복학 등 사발식을 통해 무언가를 신고해야 한다면서 의식 행위를 위한 의례주로서 막걸리가 등장한다. 대상자들은 어렵고 힘들게 또는 여유 있고 간단하게, 막걸리찬가가 질퍽하게 흐르는 그 사발식의 통과의례를 거친다.

그리고 넉넉하게 준비한 의례용 술로서의 막걸리는 항상 남는다. 의례가 끝난 이후 대다수 학생들은 아무도 더 이상 그 남은 막걸리를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일단 그 남은 막걸리를 그 날 내가 마셔야 할 내 몫의 술로 챙긴다. 마치 제례 이후 퇴주의 음복을 통해 조상들과 대화를 하듯, 그 남은 막걸리를 마시면서 사발식을 거친 학생들과 교감을 하고, 그 행위를 만든 우리의 선배들을 만난다. 나만의 사발식에서 가슴 속으로 부르는 막걸리찬가이다.

정운용(인문대 교수, 문헌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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