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철(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의 마음에 우주를 심은 건 어릴 적 본 사진 한 장이었다. “바이킹호가 화성에서 찍은 흑백사진이었죠. 난생처음 봤는데도, 왠지 낯설지 않더라고요.” 야릇한 기시감은 소년을 우주로 잡아당겼다. 이상하리만치 강한 중력이었다. “그때부터 쭉 우주에 관심을 가졌어요. 왜 내가 여기에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까 하면서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별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다. 그중에서도 항성이 수명을 다해 폭발하는 단계인 초신성을 관찰해 항성의 진화 과정을 추적한다. “초신성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해요. 별이 죽는 모습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죠. 최근에는 기존 항성진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신성이 많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폭발 과정에서 나오는 빛이 일반 초신성보다 훨씬 밝거나, 밝기 변화 양상이 기존과 전혀 다른 것들이 있어요. 이런 초신성을 어떻게 설명할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윤성철 교수가 우주의 빛이 주는 정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항성연구에 가장 중요한 정보가 빛인가요

  “우주에서 오는 빛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질량과 같은 항성의 특징도 빛으로 추정하죠. 원리를 살펴봅시다. 항성은 중력과 압력이 균형을 이루면서 유지됩니다. 질량에 따라 발생하는 중력이 있고, 그 중력과 균형을 맞추는 압력이 존재하는 거죠. 압력은 온도와 연결됩니다. 질량이 크면 압력이 커지고 온도도 높아지는 거예요. 각기 다른 온도가 저마다 다른 파장의 빛을 뿜기 때문에 우주에서 온 빛을 분석하면 별의 온도와 압력, 질량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우주에 있는 물질의 종류, 그 물질의 성질도 모두 빛을 통해 알아내죠.”

  2017, 천문학 역사에 기록될 만한 새로운 빛이 관측됐다. 두 중성자별의 충돌로 발생한 킬로노바(kilonova)’. 밝기가 초신성(supernova)보다는 어두워 그런 이름이 붙었다. 킬로노바는 그간 가설로만 남아있던 철보다 무거운 중()원소의 기원을 설명할 핵심 단서다. “철보다 가벼운 원소는 별 내부의 핵융합으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은 그 자체로 굉장히 안정적이라 더 무거운 원소로 융합하지 않아요. 온도가 더 높아져봤자 오히려 가벼운 원소로 분해될 뿐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철보다 무거운 원소의 기원이 중성자별의 충돌이라고 추측해왔어요. 중성자별이 충돌하면서 방출된 자유중성자가 철과 결합했을 거라는 가설이죠. 중성자는 전하를 띠지 않아서 다른 원자와 쉽게 결합하거든요.”

- 킬로노바의 관측은 가설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정말로 중성자별 충돌에서 금이나 백금 같은 중원소가 만들어졌다면, 빛의 불투명도가 커져 붉은빛을 띠어야 하거든요. 지표면의 먼지와 높은 대기밀도 때문에 노을빛이 붉어지는 것처럼요. 킬로노바의 스펙트럼을 관찰했더니 붉은빛이었습니다. 아직 한 번 관측된 현상이긴 하지만, 킬로노바는 중성자별 충돌이 중원소의 기원이라는 가설을 99% 지지하는 자료입니다.”

  별의 진화와 물질의 기원. 가늠하기도 힘든 먼 거리와 오랜 시간.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넓디넓은 우주의 비밀이 우리 일상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사실 천문학이 시급한 문제를 다루는 학문은 아니죠. 천문학을 통해 인간이 당장 얻는 유익이 무엇이라고 말하긴 어렵네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학문입니다.어릴 때 다들 한 번쯤 나는 누구지?’, ‘우주는 왜 있지?’ 하는 호기심을 품었을 거예요. 나이를 먹다 보니 궁금해할 겨를이 없어지지만요. 그런 질문을 파헤치는 게 천문학입니다. 가장 근원적인 수준에서 말이죠.”

- 국내에 천문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열 곳이 채 안 됩니다

  “GDP 대비 천문학자의 수를 따지면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많이 부족합니다. 이건 단순히 천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학 전반의 문제인 것 같아요. 자연과학의 가장 큰 진입장벽은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이 크다는 거예요. 박사 마치고 포스닥(post doctor)까지 해야 정규직을 얻는데, 그 기간이 너무 길어요. 경제적 안정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시대잖아요? 자연과학 연구 기반도 그에 맞춰 발전해야 할 겁니다. 경제적 불안감을 해소할 시스템을 마련할 수만 있다면 자연과학이 젊은이들에게도 참 매력적일 텐데요.”

  윤성철 교수는 독일 유학 시절 동료 이야기를 꺼냈다. “덴마크 사람이었어요. 교사를 하다 천문학을 연구하러 독일로 왔죠. 연구를 잘 해서 직장을 얻을 기회가 있었는데, 덴마크로 돌아가더라고요. 지금은 덴마크에서 비정규직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얘기를 들었을 땐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까 의아했죠. 실업수당이나 연금제도가 잘 갖춰진 덴마크라면 가능하겠더라고요. 연구자 생활에 어려움을 겪더라도 사회복지제도 속에서 재기할 수 있다면 모험이 가능한 거죠.”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는 100억 개 이상의 지구형 행성이 있다. 우리 은하와 유사한 은하는 2조 개에 이른다. 곱하면 어림잡아 1022개가 넘는 지구형 행성이 있다는 뜻이다. 천문학의 눈으로 본 지구와 인간은 이토록 작은 존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보잘것없음이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 우주를 통해 인간을 들여다본다고 하셨습니다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하죠? 보이저호가 명왕성을 통과할 때 찍은 지구 사진입니다. 지구가 작은 먼지처럼 보여요. 당시 많은 반대 속에서도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 Sagan)은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꼭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구인들에게 우주 속 지구의 위치를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죠. 초월자의 관점에서 지구를 바라볼 기회를 준 거예요. 누구나 이런 초월의 경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껏 중요하게 여겨왔던 법이나 종교, 관습 같은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요. 사람들은 종종 그런 질서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해 타인을 억압합니다. 동성애를 향한 편견이 그렇고, 가부장적 질서가 그렇죠. 하지만 그런 질서는 고정된 게 아니에요. 천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건 작은 지구 안에서 우연히 생겨났을 뿐입니다.”

  새까만 우주에 덩그러니 놓인 지구의 모습은 또 한 가지 깨달음을 준다. 인류는 스스로 엄청난 성취를 달성했다는 사실이다.“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쓰던 때는 냉전이 한창이었습니다. 언제든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었어요. 천문(天文)의 시각에서, 그는 인간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자 했습니다. 우주의 먼지에서 시작해 이만큼의 성취를 이룬 인류라면 냉전의 위험은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는 뜻이었죠. 이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당장 코로나19뿐 아니라 지구온난화, 에너지 고갈 등 여러문제에 당면했어요. 우리가 정말 이를 극복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생길 때, 인간의 이성이 성취한 업적을 떠올리면 돼요. 천문학적 관점에서 말이죠.”

 

이동인기자 whatever@

사진양태은기자 aurore@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