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법익 보호하기 위한 형법상 ‘직권남용죄’와 ‘직무유기죄’]

  공무원은 청렴해야 한다. 공무원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서 형법 제122조와 123조에서는 각각 직무유기죄와 직권남용죄를 규정하고 있다. 의무를 방임하고, 직권을 부당하게 행사하는 공무원들에게 형사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공무원의 공정한 직무수행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직권남용죄, 직무유기죄의 고소·고발 사례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현행법상 직권남용과 직무유기가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될지, 관련한 법적 쟁점은 없는지 판례를 위주로 살펴봤다.

인포그래픽 - 윤지수 기자 choco@

 

실제 처벌까지 이어질 확률 낮아

모호한 ‘직권’과 ‘남용’의 개념 탓

공무 수행의 적절성 보장해야

 

  형법 제123. 직권남용죄.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개인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개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했을 때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공무원의 공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법이다.

  2014년에서 2016년까지 최대 6000여 건 수준이던 직권남용 고소·고발 건수는 2017년 약 9000, 2018~201915000여 건에 이르렀다. 조기영(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가 성숙하며 고위공무원이나 법관들이 직무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고, 국정농단·사법농단 사건 등 과거 정권의 불법행위 청산 작업에서 직권남용죄가 활용되는 데 증가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고소·고발 건수가 2017년부터 급증하고 있지만 실제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작년 기준으로 1% 미만이다. 기소로 이어진다고 해도 무죄 선고율이 높다. 2017년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된 12명 중 9명이 무죄 선고를 받기도 했다. 2019527일 매일경제가 직권남용으로 기소된 국정농단 사건 97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1심에서는 36%, 최종심에서는 28.8%가 무죄 선고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직권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아서다. 검찰과 법원의 해석도 일관되지 않다.

 

인포그래픽 - 송유경 기자 clover@

 

해석하기 나름인 직권남용

  직권남용이 성립하려면 우선 직권을 행사한 것이어야 한다. 직권남용죄에서 언급하는 직권이란 무엇일까. 죄형법정주의에 따르면 어떤 직권이 공무원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그에 관한 법령상의 근거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명문이 없는 경우라도 법·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관찰해서 그것이 해당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보이면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직권, 일반적 권한에 포함된다고 해석했다(대법원 2011.7.28. 선고 20111739 판결)

  사례를 살펴보자. 해군본부 법무실장인 피고인이 국방부 검찰수사관에게 군납비리 수사와 관련한 수사기밀사항을 자기한테 보고하게 해 직권남용으로 기소된적이 있다(대법원 2011.7.28. 선고 20111739 판결). 피고인이 해군 소속 인원의 사법처리와 관련한 주요 사항을 보고받을 일반적인 직무권한이 명문화된 법률은 없다. 대법원은 이처럼 명문화돼있지 않더라도 일반적 직무권한으로 볼 수 있다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에게 직권남용죄를 인정한 원심판단을 수긍했다.

  일반적 직무권한의 범위를 달리 봐 1심과 2심에서 다른 판결이 내려진 경우가 있다. 2014년 대통령 비서실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특정 단체를 지원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1심에선 비서실장의 자금 지원 요청이 비서실장의 직권에 속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업무적인 형식과 외형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무죄를 선고했다(서울지방지법 2017고합1114).

  2심에서는 대통령비서실 직제 제9(대통령 비서실의 하부 조직과 그 분장 업무는 비서실장이 정한다)에 따라 비서실장의 요청이 직권(정무수석실의 분장사무나 직능 단체와의 협력추진)에 포함된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서울고법 20182856). 직권남용죄 해석의 가변성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남용의 사전적 의미인 권리나 권한 따위를 본래의 목적이나 범위를 벗어나 함부로 행사한다를 고려해 직무권한 밖의 지시가 남용으로 포함된 판례도 있다.

  재정경제원장관이 직권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개인적 친분을 이유로 특정 기업을 도와주기 위해 대출을 요구한 사건이 대표적이다(대법원 2004.5.27. 선고 20026251 판결). 장관의 요구에 따라 해당 기업의 주거래 은행장은 회생 가능성이 불투명해 대출 가능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기업에 대출을 승인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요구에 안 되는 것을 되게 해달라는 의미가 짙었고 이에 따라 은행장이 관련 채권은행장들을 설득해 협조융자에 나선 것은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무 수행에 대한 국민적 신뢰 필요

  직권과 남용의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때 직권남용죄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좁으면 부적절하게 사용된 공권력을 규율할 수 없고, 너무 넓으면 공무원의 직무 활동을 위축할 수 있다.

  류현 법률사무소 장현수 변호사는 일반적 직무권한의 인정 범위를 다소 완화해야 한다다양한 판례가 쌓이다 보면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반적 직무권한을 판단할 때는 일반 시민의 시각에서 공권력 행사가 외견상 자유의 제한을 초래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무원 내부관계에선 직권남용죄 적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무법인 동인 이완규 변호사는 직권남용죄의 본래 입법 취지는 직권행사의 상대방이 일반 국민인 외부관계에서 개인의 자유 억압이나 권리행사 방해를 처벌하는 것이었다직권남용을 공무원 내부관계에 적용하다 보면 피지시권자들이 검사의 마음먹기에 따라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공범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들의 공직 수행 원활성을 위해 직권남용죄를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방향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장 변호사도 공무 수행의 목적이 정당하다면 직권남용죄의 적용을 배제하는 방법으로 행정 작용의 위축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면 조기영 교수는 현행 직권남용법이 공무 수행을 위축시키지 않는다고 본다. 조교수는 공무원은 각각 그 직무범위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가지고 있으며, ‘남용은 이미 그 자체에 공무 외적 의도나 동기를 가지고 직권을 이용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법치주의에 따라 공직을 수행하는 공무원들 대부분은 어떤 행위가 적정한 직무수행이고 어떠한 행위가 직권남용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직권남용죄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다.

 

| 신혜빈 기자 venus@

인포그래픽 | 윤지수, 송유경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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