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법익 보호하기 위한 형법상 ‘직권남용죄’와 ‘직무유기죄’]

  공무원은 청렴해야 한다. 공무원의 일탈을 방지하기 위해서 형법 제122조와 123조에서는 각각 직무유기죄와 직권남용죄를 규정하고 있다. 의무를 방임하고, 직권을 부당하게 행사하는 공무원들에게 형사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공무원의 공정한 직무수행에 대한 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직권남용죄, 직무유기죄의 고소·고발 사례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현행법상 직권남용과 직무유기가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될지, 관련한 법적 쟁점은 없는지 판례를 위주로 살펴봤다.

인포그래픽 - 윤지수 기자 choco@

적시성 있는 구체적 직무에 적용

부작위범으로 해석해야 자연스러워

판례 통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 필요

  공무원의 직무유기. 형법 제122(직무유기죄)"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형법에서 별도로 직무유기죄를 규정하는 이유는, 형법상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행위가 국민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커서다. 강영상 변호사는 공무원들의 소극적 행정으로 인한 폐해는 생각보다 심각하다구체적인 의무가 규정돼 있는데도 직무를 포기하는 공무원을 형사적으로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국민의 법익을 보호한다는 목적이 있지만, 통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직무유기와 형법에서 해석하는 직무유기는 차이가있다. 그렇다면 형법상의 직무유기는 어떻게 성립할까. 전문가들의 의견과 판례를 바탕으로 형법에서 규정하는 직무유기죄의 성격과 성립요건에 대해 살펴봤다.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해야 성립

  우선 공무원의 직무부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크게는 법령의 근거, 상사의 지시, 명령 등에 따른 직무와 공무원이라는 신분에서 부수적, 파생적으로 발생하는 직무로 나눌 수 있다. 직무유기죄의 직무는 전자에 해당한다. 이승우 변호사는 직무유기죄의 직무는 법령에 근거가 있거나 특별한 지시 또는 명령이 있기에 적시에 수행해야 할 구체적인 직무라고 설명했다.

  이를 거부하거나 직무를 유기했을 때 직무유기죄가 성립한다. 직무집행을 거부하는 것은 공무원이 능동적으로 직무를 집행할 의무가 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검사가 피의자를 경찰서로 호송해 유치장에 감금하도록 경찰관에 지시했으나 해당 경찰관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한 경우를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때 직무유기죄가 성립한다(20079481). 단순히 직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모든 공무원이 처벌받진 않는다. 대법원 판례는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며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직무유기죄를 적용한다고 밝힌다(65984). 직장의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도 포함된다.

  ‘직무 유기도 보자. 직무 태만과 형법상 직무유기를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행위의 고의성이다. 직무를 유기한다는 것은 이를 의식적으로 방임한 것이다. 강영상 변호사는 공무원이 직무유기죄로 처벌받으려면 자신의 구체적 직무를 의도적으로 저버리는 수준이어야 한다단순히 무지나 착각 등으로 직무를 실수로 저버리거나 주된 업무가 아닌 것을 하지 않았다고 처벌받지는 않는다고 했다. 경찰관이 분실 오토바이를 습득물 처리 절차에 따라 처리하지 않고 오토바이 센터를 운영하는 자에게 보관하게 한 경우 직무유기죄를 선고받았다(20016170). 습득물을 지침에 따라 처리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의식적으로 방임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일직사관이 순찰 등을 하지 않고 잠을 잔 경우에 직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았다. 법원은 근무에 성실히 임하지 않은 것은 인정되나, 직무를 유기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833260). 피고인은 사건 당시 즉시 깨어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근무장소에서 잠을 잤다. 법원은 피고인이 고의로 직무를 포기하거나 직장을 이탈했다고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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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해 해석해야

  직무유기죄의 성질을 둘러싼 학계 논의도 있다. 직무유기가 진정부작위범(부작위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도록 규정된 범죄)인지, 작위에 의해서도 성립 가능한 범죄인지에 대해서다.

  직무유기는 공무원이 주어진 직무를 일부러 하지 않아서발생한다. 그렇기에 직무유기가 부작위에 의해 일어나는 범죄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직무유기가 작위로도 성립할 수 있는가를 두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 강영상 변호사는 어떤 행위에 작위적인 면과 부작위적인 면이 동시에 상존하는 경우에 대해 두 범죄가 모두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경찰관이 범인을 잡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피시킨 경우, 경찰관이 범인을 도피시키는(작위) 동시에 범인을 잡아야 할 본연의 직무를 유기(부작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증거인멸죄(작위)와 직무유기죄(부작위)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음을 인정한 판례도 있다(66840).

  이처럼 작위로도 직무유기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지만, ‘직무유기죄는 진정부작위범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오병두(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직무유기죄를 진정부작위범으로 파악하면 부작위범이론에서 발전된 일반론으로 그 성립범위를 구조화하고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직무 유기죄를 진정부작위범으로 제한해 더욱 체계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창수 변호사는 작위에 의한 직무유기죄가 논의되는 영역은 모두 그 작위가 다른 범죄를 구성한다고 했다. 작위에 의해 직무유기죄가 성립한 경우, 대부분 다른 범죄가 동시에 성립한다. 이 경우 작위범이 우선 적용된다. 굳이 부자연스러운 작위에 의한 직무유기를 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원혜욱(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은 작위와 부작위가 동시에 성립하는 경우 작위범을 우선 적용해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라 판시한 바 있다가령 경찰공무원의 범인 도피행위와 직무 유기행위는 원칙적으로 작위범인 범인도피죄가 우선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직무유기죄의 성립범위를 더욱 구체화하려면 다양한 사례가 축적돼야 한다. 천창수 변호사는 결국 많은 사례가 축적되며 직무유기죄의 성립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 할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면서도 처벌 사례가 많이 축적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원혜욱 교수는 각각의 상황에 따라 직무유기 행위가 달리 판단될 수는 있지만, 그동안의 판결내용들을 분석해 대법원이 직무유기죄의 판단 기준을 정리해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 맹근영기자 mangr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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