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내 일의 결과를 캡처하는 버릇이 생겼다. 언제 지워질지 몰라서다. 최근 지켜보고 쓴 음주운전 재범의 공판은 최후 변론부터 선고까지 다 지워졌다. 부모 잘 만나 사고 쳐도 걱정 없는 도련님 재판이어서다.

  “미안하다. 나도 나름 싸웠는데...” 무더위에 아이스크림도 아니고 또 엿 바꿔 먹었단다. 내 엿은 얼마짜리냐고 물었다. 들려오는 대답에 눈을 질끈 감았다. “방청 온 아버지 사진은 안 찍었느냐는 물음은 단지 엿 값을 높이기 위한 질문이었구나. 아이스크림 대신 자존심이 녹아내렸다.

  나는 웃기로 했다. 재판 두 번에 두 달 치 월급을 벌었으니까. 이번 통화로 내 소임은 확실해졌다.‘어차피 지워질 글의 소재를 찾는다. 열심히 써서 엿 값을 높인다.’

  반면 어느 집안 장남의 마약사건 재판은 선고 공판을 앞둔 지금도 안 지워졌다. 형량 낮춰 보겠다고 최후 진술 직전 어머니를 증인석에 앉힌 아들은 고개 들지 못했다. 판사와 부모 앞에서 자기 이름의 유래를 말하려다 목이 메어 잇지 못한 모습을 묵묵히 적었다. 피고인에게 불편하지만, 누군가에겐 죄의 무거움을 알게 하는 장면이므로. 하지만 회사의 목적은 조금 달랐다. “아직 별 얘기가 없네. (우리 회사도) 재판 들어가라는 뜻이지 뭐.” 다음 주에도 캡처를 해야겠다.

  세상 물가는 나의 글 값을 빼고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게다가 요즘은 돈 안 받고 쓰는 글이 더 높은 가치를 자랑한다. 진인(塵人) 조은산은 상소문을 가장한 격서(檄書)로 청와대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반면 말로 줄타기하던 김민아는 혀를 헛디뎌 수익 창출에 애먹게 됐다. 난세 아닌 때가 없지만, 요지경, 이 시국에 내가 설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당분간 설 자리는 그만 찾고 앉기로 했다. 학생 시절의 나라면 용납 못 할 세상의 이치가 나의 비루한 밥벌이를 지탱하고 있으니. 이번 달 월급 타면 펭수 인형을 사야지. 민낯이 불편하지만, 없으면 안 되는 어른의 돈으로.

 

<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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