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확산 추세가 매섭다. 코로나 확산에 대규모 집회가 미친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매일 아침 쏟아져 나오는 뉴스와 확진자 추이는 코로나 이후의 일상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또 한 번 체감하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불특정 다수를 비난할 수 없다. 물론 대규모 집회로 인해 코로나 확산이 가속화된 것은 맞다. 하지만 코로나의 확산방지라는 명목이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의 박탈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집회자체를 막을 수 없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집회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자유가 국민의 건강보다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유와 공익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그래서 코로나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의 행사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권리를 어떻게 누려야 할까?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의무도 다해야 한다. 즉 대규모 집회를 할 수는 있으나 코로나 이후의 집회 방식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켜는 대신,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결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해야 한다. 권리 행사를 위해 광화문으로 나선 이들은 코로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용맹함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단편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전국의 수험생들은 시험일이 연기될까 노심초사하고 있으며, 간신히 트였던 상인들의 숨통은 얼어붙은 경제로 다시 조여오고 있다. 우리는 늘 나의 권리 행사가 타인의 불편을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바꿔 놓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속속들이 말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로 인해 삶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는 끝나지 않는다.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코로나가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제2, 3의 코로나가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코로나는 이제 단순한 병명이 아니다. 코로나는 인류가 신종 바이러스와 공존해야 하는 시대의 신호탄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코로나를 경계해야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을 이후로 미룰 수만은 없다. 코로나가 당장의 행복을 미루어야 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는 단지 우리가 그동안 행복을 추구해온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시도할 수는 없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할뿐이다. 코로나 시대, 무관중 경기라는 묘책을 떠올린 한국인들은 분명 대규모 집회에 대한 해답도 찾아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홍지희(사범대 가교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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