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도전에 진심인 사람은 이렇게 한다
[사람들] 도전에 진심인 사람은 이렇게 한다
  • 송정현
  • 승인 2020.08.30 2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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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휘(국제학부 12학번) SPOTV 아나운서 인터뷰

#서휘 하고 싶은 거 다 해
#못하는 게 없는 멀티·플레이어
#네 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

  세상은 넓고, 직업은 많다. 다만 내 직업은 없을 뿐. 취업 길이 막히거나, 인생의 굴곡을 겪는 청년들은 아예 다른 결의 꿈을 꾸기도 한다. 내 능력껏, 자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 그녀도 한가지 갈래로 정의하기 힘든 삶을 산다. 걸그룹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해 스포츠 아나운서와 피트니스 선수, 스포츠웨어 브랜드 대표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박서휘(국제학부 12학번) 교우다.

 

‘걸그룹’ 편견 떨치려 고군분투

  그녀는 ‘찐’ 야구 덕후다. 무작정 독립 야구단 연천 미라클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한국 독립야구 최초 여성투수’ 가 바로 그녀다. 실제 직장도 야구와 가까운 일을 구하고 싶어서 스포츠 아나운서를 선택했다. “야구를 좋아하고 말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야구잡지 DUGOUT 에디터로서의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야구를 향한 그녀의 애정보다는 전 걸그룹 멤버라는 타이틀에 주목했다. 그녀는 21살에 걸그룹 ‘LPG’로 데뷔한 적이 있다. 데뷔만 하면 잘될 거라고 기대했지만 연예계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악플이 굉장히 많았어요. 지금은 아닌데 그때는 저한테 관심이 너무 많으셨거든요.” 하루에 1000개씩 악플이 달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매일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보며 우울증도 겪었다.

  걸그룹 탈퇴 이후에도 ‘LPG 출신’이라는 이력은 그녀를 따라다녔다. “지금도 기사가 나갈 때마다 ‘아나운서 박서휘’가 아닌 ‘LPG 출신 아나운서 박서휘’라고 기사가 나가요. 걸그룹 출신이라고 하면 전문성보다는 끼가 많다는 이미지 때문에 오히려 그 타이틀을 벗어내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스포티비 입사 당시에는 유명해지기 위해 아나운서가 된 게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그래서 전문성을 기르려고 더 노력했어요. 하루 동안 나온 야구 기사는 정말 다 봤어요. 우리나라에 파는 야구 용어 책도 모조리 다 읽었고요.”

야구가 가져다준 제2의 삶

  “7시 경기면 서너 시간 전에 경기장에 먼저 가요. 그전에는 숍에 가야 하니까 점심쯤 준비를 시작하죠. 경기가 12시까지 끝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럼 끝날 때까지 일하고 직접 운전해서 퇴근해요. 잠들기 전에는 새벽까지 그날 뉴스를 모조리 봐야 하고요.” 야구가 좋아서, 야구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시작했던 스포츠 아나운서 생활은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남들과 다른 리포팅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발성과 표정, 발음을 연습해야 한다. 방송에서 NG를 내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참신한 리포팅을 위해 90년대 리포팅까지 찾아봤어요.”

  6년 차 아나운서지만 방송에는 비법이 없다. 많이 해보고 연습하는 게 그나마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 시간 날 때면 1분 정도 되는 분량의 리포팅 대본을 써서 외우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걸 연습한다. “1분 리포팅을 계속 연습하다 보니 그 시간을 몸으로 익히게 됐어요. 처음에는 긴장해서 말을 빠르게 했는데 익숙해지니까 편하게 말할 수 있더라고요.”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지금도 야구는 여전히 탐구의 대상이다. “야구라는 건 변수가 정말 많아요. 공부를 해도 계속 새로운 상황이 나오니까 정말 어렵더라고요. 지금도 노트에 야구 용어를 적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그녀는 야구를 ‘제2의 삶’이 라고 표현했다. “어떻게 보면 야구 덕분에 ‘박서휘’라는 본명을 쓰게 됐거든요. 야구잡지를 통해 난생처음 제 글이 사람들 앞에 나올 수 있었고,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소망해오던 직업을 얻게 됐죠. 야구 덕분에 제 인생이 더 행복해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중

  박서휘 아나운서는 글로벌 피트니스 대회 ‘ICN 코리아 월드컵 내추럴 선수권 대회’에서 입상해 피트니스 선수로 활동했다. 67개국이 참여한 세계적인 대회였지만 그녀가 준비한 시간은 단 6개월. 다른 선수와 비교해 무척 짧은 기간이었다. “처음 대회에 나가보라고 권유를 받았을 때는 안 하려고 했어요. 피트니스 대회를 색안경을 끼고 봤었거든요.”

  그녀에게 비키니 차림으로 남들 앞에 선다는 건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대회에 출전하고 보니 피트니스도 스포츠였다. “아직 많은 분께서 피트니스 대회를 떠올리면 노출을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스포츠로 바라보니 전혀 부끄럽지 않게 임할 수 있었어요.”

  운동 경력을 살려 스포츠웨어 브랜드 ‘휘스핏’을 런칭하기도 했다.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레깅스를 정말 많이 가지고 있었거든요. 어느 순간 ‘내가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작했죠.” 사업은 처음이었지만, 소비자 반응은 괜찮은 편이다. 출시한 레깅스가 4일 만에 완판됐다.

  내년 3월에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다양한 공예들을 체험할 수 있는 공방 카페를 열 계획이다. 그녀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공방에서 도예를 배우고 있다. “카페는 사람을 상대하는 사업이다 보니 공부가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단단하게 내일을 산다

  스포츠 아나운서, 피트니스 선수, 스포츠 웨어 브랜드 대표까지, 여러 개 직함이 붙은 그녀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생계를 위해 대형마트 시식코너에서 알바를 해야 했다. 프리랜서 특성상, 일이 많을 때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정말 없기 때문이다. “시식코너에서 알바하면 1000개짜리 이쑤시개를 다 써요. 하루에 1000명을 만난다는 거죠. 간혹 손님 중에 걸그룹 시절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여기서 뭐 하냐고 물어 보기도 했어요.” 서글픈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더 강하게 다잡았다. “연예계 데뷔 후 실패를 겪고 나니까 저 자신이 더 단단해지는 걸 느꼈어요. 인생에 굴곡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예전보다 일이 적든 많든 일희일비 안 하려고 노력해요.”

  그녀가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배운 건 책임감이다. “남들보다 많이 뛰어야 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해요.”

  뛰는 만큼 돈을 벌고, 정해진 출퇴근이 없기에 남들 일할 때 놀고, 놀 때 뛰는 사람. 프리랜서란 직업은 분명 까다롭지만, 하고픈 것 다 하려는 그녀에겐 천직이다. “여러 직업을 병행하는 게 어렵긴 하지만 매일이 새로워요.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되고요.”

글│송정현 기자 lipton@

사진│박소정 기자 chocopie@

사진제공│박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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