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언론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고대생은 박성민일 것이다. 176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의 최고위원으로 지명됐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박성민 씨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았다. 발언 하나, 심지어 직책당비를 얼마 내야 하는지도 뉴스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20186월 더불어민주당에 들어가 작년 9월부터 청년대변인으로 활동했지만, 지명 직전까지도 그는 무명이었다. 지명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달린 이유다. ‘박성민이 누구야?’ 여의도의 중심에서 청년과 여성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96년생의 젊은 여성 정치인. 그는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수 있을까. 2일 저녁 본사 편집국에서 박성민 최고위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여러 소문이 있지만, 우선 이낙연 대표와의 인연은 전혀 없다. 당 대표자 선거 때도 중앙당 선관위 소속이었기에 철저히 중립을 지켰다. 후보 연설 때 인사 한번 드린 것이 전부다. 부모님 역시 소상공인으로 평범한 분들이다. 정치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네가 하겠다면 응원하지만 지원해주긴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 지명 이후 달라진 게 있다면

  “바짝 긴장한 상태다. 처음 (이낙연 대표의) 연락을 받은 날부터 하루 서너 시간 밖에 못 자고 있다. 변화라고 한다면, 내 스피커가 커졌다는 게 체감된다. 오늘만 해도 인터뷰를 7개나 했다. 기사로 다뤄지는 빈도가 높아졌다. 발언 하나하나가 도마 위에 올라가는 상황이기에 부담도 크다.”

 

"이슈를 만들려 애쓰고 싶지는 않다. 욕심을 내다보면 의도와 다른 말을 하게 되고, 결국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할 거다. 또한, 청년과 여성의 편에 서겠다는 원칙만큼은 꼭 지키고 싶다"

 

  보통 청년의 정치 외치다

  박성민 최고위원은 강남대 국어국문학과에 15학번으로 입학했다가 2019년 본교 국어국문학과로 편입했다. 4년 중 절반은 학교에 다니고 나머지는 휴학생 신분으로 살았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치열하게 병행하던 시간이 행복하지 않았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 휴학을 결정하고 멕시코로 1년간 봉사를 떠났다.

  귀국 즈음 정치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섰다. 검색창에 정치인 되는 법을 쳐보기도 했다. “냉정한 답변이 많았다. 돈이 많아야 한다, 인맥이 있어야 한다, 나이 먹고 해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오히려 그때 문제의식을 느꼈다.”

  평범한 사람이 정치에 나설 길이 없는 현실. 앞으로 정치에 뛰어들 청년들을 위해서라도 선례가 되고 싶었다. “운이 좋았다. 청년 정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당에서도 길을 많이 열어둔 것 같다.”

 

  - 정치 입문 계기는

  “고등학교 때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부채의식을 갖게 한 사건이다. ‘슬픔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부적절한 뉴스가 나왔었고, 나 또한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고 그 시간을 지나보냈다. 17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이 있었다. 당시 멕시코에 있었는데, 반신반의했던 일이 정말 실현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 비로소 참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알게 됐다. 정치 참여에 냉소적이었던 모습이 부끄러워 그동안과는 다른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정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능동적인 수단이고, 공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목표를 실현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 학업과 정치 활동을 병행하는가

  “이번 학기는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 온라인 강의여서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18학점을 신청했고, 최대한 강의 시간에 제약받지 않으려 두 개의 무크 강의를 담았다. 이번 학기에 융합 전공을 신청해야 하는데, ‘공공거버넌스와 리더십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학업도 중요하지만, 워낙 큰 역할을 맡았기에 지금은 당이 우선이다.”

 

  - 일정이 빠듯하진 않겠나

  “청년대변인이었을 때는 주말만 제외하고 매일 아침 9시까지 국회로 갔다. 당의 중요한 회의가 그때 열려서다. 앞으로는 일주일 내내 국회로 출근할 것 같다. 이번 학기 일정도 주요 회의들에 맞췄다. , , 금요일에는 최고위원 회의가 있어서 주로 화, 목요일 수업을 신청했다. 주말엔 강의 들으면서 일도 해야 한다.”

 

  - 학내 커뮤니티에서 본인에 대한 글을 봤나

  “안 그래도 방금 댓글 남기고 오는 길이다. 지인이 말해줘서 찾아봤는데 나에 대한 정보가 정말 자세하게 올라와 있었다. 관심도 비판도 겸허히 받고 싶다. 커뮤니티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고파스에는 딱 두 종류의 글을 올린 적 있다. 하나는 예전에 회장으로 있었던 고란도란의 모집 공지고, 다른 하나는 넷플릭스 4인팟에 끼워달라는 글이었다. 넷플릭스는 지금도 잘 이용하고 있다.”

 

  - ‘보여주기용 발탁이라는 비판도 나오는데

  “나 같으면 보여주기용이라도 이 정도 권한은 안 주겠다. 지명해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걸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지 않나. 행사 때 불러서 앞에 세우고 같이 청바지 입고 사진 찍는 퍼포먼스는 할 수 있어도, 지도부의 일원이라는 직책을 주려면 큰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 줄 알고(웃음).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쇼를 하려고 큰 정당이 위험을 감수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청년을 대변할 역량을 자부하나

  “몇몇 분들은 대학 졸업도 안 하고, 취업시장의 냉혹함도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어떻게 청년들을 대변하겠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청년이란 존재는 하나의 그림으로만 표현될 수 없기에, 누가 맡더라도 완벽하지 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대변하려면 일단 들을 준비가 돼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불완전함도 알아야 한다. 나는 색채가 강한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의 부족함도 너무 잘 안다. 그렇기에 다양한 청년들의 말을 더 많이 들으려 노력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공감대도 있기에 소통은 자신 있다. 청년 감수성을 잃지 않고 여의도의 문법에 갇히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다. 약속드린다.”

 

박성민 최고위원은 "청년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청년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사회는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대학등록금부터 시작해서 취업 준비를 하는 데에도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부모님 손을 안 빌리기 힘들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서류심사를 받는 데에도 몇십, 많게는 몇백만 원까지 내야 하는데, 청년들이 어떻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겠나.”

 

  - 젠더문제에선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남성 중심적인 정치문화가 굉장히 오랫동안 형성돼왔기에 남성들끼리만 대화하다 보면 언어를 무감각하게 사용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함께 대화할 때는 분명히 신경이 쓰일 거다. 부적절한 발언이 있다면 그런 단어는 쓰시면 안 됩니다’, ‘그런 행동은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분명히 이야기할 거다. 여기서부터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겠다.”

 

  - 앞으로의 계획은

  “사람들은 내가 정치적 목표를 철저히 세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자꾸 다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현재 역할을 못 하게 된다. 청년대변인 시절, 공천을 받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면 청년의 입장에서 솔직한 발언을 못 했을 것이다. 당과 청년의 입장이 상충할 때 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지금은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싶다. 임기가 끝나면 확실히 졸업은 해야겠다(웃음).”

 

글 | 강민서 기자 jade@

사진 | 박상곤·박소정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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