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세평]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주장인가?
[탁류세평]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주장인가?
  • 고대신문
  • 승인 2020.09.0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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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 의과대 교수·의학과

 

  필자가 대학에 입학한 3월 초였다. 신학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수업 하나 듣고 나면 새내기가 그렇듯이 배낭 메고 교정을 여기저기 구경 다니던 때였다.

  최루탄 냄새가 배어있는 민주광장을 걷던 나에게 선배님이었을 고대 영자신문사 기자가 나를 불러세웠다. 나에게 언제쯤 대학생이 된 것을 느꼈나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19살 젊은 남자가 대학생이구나하고 느낀 때는 안국역 출구에서 가방을 열어보라는 말에 싫다고 했다가 마치 건달들에게 잡혀가듯 전경들의 뒷골목으로 끌려갔던 경험이었다. 딱히 잘못한 건 없었지만, 이유도 없이 내 가방을 보겠다는 것에 반감을 표시했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의 신입생들은 언제 대학생이 된 것을 느끼고 있을까? 학기 초에 항상 느낄 수 있었던 크림슨 색의, 함께 행동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흥분과 동질감을 올해의 새내기들은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다. 대학생이라고는 하는데, 이전에 비해 달라진 건 무엇일까? 좀 더 여유 있는 시간과 그걸 스스로 매니지해야 하는 책임도 나에게 달렸다. 뭔가를 하자 그러거니,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이제는 더 이상 없다.

  주변에서는 수많은 사회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왜 그 사람은 그런 글을 썼을까? 코로나 사태로 방역을 해야 하는데 왜 확실한 3단계가 아니라 2.5단계인가? 의대생들과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은 왜 파업을 하고 의사시험도 보지 않는다는 것일까? 수많은 방송과 SNS에서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의 해석과 결론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들의 의견 중에 뭐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수십 년 전엔 선배들이, 또 이 땅의 지식인이라는 존재가 사회를 진단하고, 젊은이의 의무를 알려주던 시절이 있었다. 선후배가 모여서 읽고 해석하는 것도 여럿이 같이 하니까, 공통의 결론을 내리기도 쉬웠을 것이다. 혹시라도 개성적인 다른 의견을 말하는 친구가 있으면, 여러 명의 선배와 동기들이 마치 선교라도 하듯 설득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사회가 성숙한 건지, 인터넷 기술 덕분인지, 혹은 코로나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사소하고 개별적인 사건들을 스스로 혼자 있는 방에서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스스로 수많은 사회현상을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마음과 이성을 훈련하는 시작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미국 유학 시절 초기 동료들과 진행하는 팀 과제를 주도적으로 준비해야 했다. 나를 제외한 팀원 모두의 모국어가 영어였던지라 아직 익숙지 않은 언어를 못 알아듣고 소외될까 내가 나서서 팀장 노릇을 하겠다고 나선 터였다. 이때 사회학 대학원을 막 마친 톰이라는 친구와 많이 대화를 했었다. 당시의 사회현상과 선거, 정치적인 입장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누었다. 그 정치인이 왜 그 문제를 그렇게 고집할까? 왜 공화당은 반대하는 거지?

  그때 톰이 맑은 눈을 들어 지나가는 말처럼 던졌던 말이 자주 기억난다. 자신은 그 일로 인해서 이익을 얻는 건 누구이고, 어떤 이익을 얻는 건지를 생각해 본다고. 결국 이익이라는 걸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그 현상의 이면이 더 쉽게 보일 거라고.

  인간의 뇌는 먹고 움직이는 것뿐 아니라, 공감하고 의견 공유를 통해 판단하는 역할까지 한다. 그런데, 이 뇌는 컴퓨터처럼 완벽한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계산하지 않는다. 지나친 완벽을 추구하면 에너지 소비가 많이 들고, 머리도 더 커져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인지기능의 휴리스틱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충 어림짐작으로 때려 맞추거나 누가 언젠가 설명한 것이 기억에 남아있으면 그냥 대충 비슷한 걸로 이해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 인간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한번 습득하고 마는 지식이 아니다. 늘 새롭게 나타나는 지식과 사건들을 받아들이되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성인이란, 지성인이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에 옮기는 존재인데, 혼자 결정하는 건 대중의 의견을 따르거나 그냥 분노와 미움에 공감해 버리는 것에 비해 아주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사회는 그런 건강한 상식에 기반한 개인들이 모여서 생활을 꾸려가는 사회이다. 결국 민주란 것도 그런 개인들의 의견을 모아서 미래를 준비하는 사회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런 합리적이고 건강한 사고를 가지려면 대학 시절 이후에도 평생 동안 단련하고 훈련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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