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5살 된 딸아이와 공주 캐릭터 색칠 놀이를 하다가 아직 살색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딸을 보고 문득 인종에 대해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주 캐릭터의 피부를 어두운색으로 칠하자 아이는 왜 이 공주는 피부가 까맣냐고 물어봤고, 나는 버락 오바마를 비롯해 유명인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피부가 까만 사람들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실제 생활에서도 만화에서도 흑인을 전혀 본 적 없는 아이가 사진 한 번 보여준다고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작년 디즈니에서 <인어공주> 실사 영화 주인공 역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을 두고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당연히 백인으로 생각하던 인어공주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NotMyAriel’이라는 해시태그가 수천 건 이상 SNS에 게재됐다. 당시에는 나도 흑인 인어공주 이미지에 완전히 동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흑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딸을 보며,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교육할지 전혀 모르는 엄마인 나를 보면서 디즈니의 결정을 100% 지지하게 됐다.

  한국 TV 프로그램에는 점점 더 다양한 인종이 출연하고 있고 고려대 캠퍼스도 아주 빠른 속도로 다문화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진행되는 다문화 사회의 내면에는 다문화 사회 포용을 위한 교육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어떤 것이 편견인지 차별인지조차 잘 몰라 사회적 논란이 되는 경우가 아직 많기 때문이다. 교환학생 시절 미국에서 만났던 한 중국계 미국인이 10여 년 전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겪은 차별적 경험을 들려준 적이 있다. 영어 과외를 하기 위해 만난 한국인 부모가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을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모국어가 영어인 친구였는데 피부색이 영어 교사의 거절 이유였다. 인종 차별에 대한 깊은 논의나 교육적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한국에서는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 최근에는 방송인 샘 오취리의 의정부고 학생 흑인 분장 비판이 큰 논란이 됐다. 큰 주목을 받았지만 블랙페이스(Blackface)가 왜 인종차별적 행위인지 등 한국 사회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해 논의하는 발전적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았다는 점은 안타깝다.

  디즈니의 결정이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과거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계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샌드라 오는 현재 출연 중인 <킬링 이브>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대본을 다 읽고도 자신이 주인공 역할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 자신도 주변에서 보이는 백인 위주의 할리우드 방식에 세뇌(brain washing)되었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대로 믿게 되는 사람의 심리란 얼마나 무서운가. 보이는 대로 그저 흘러가지 않기 위해 더 많은 흑인, 동양인 인어공주와 백설 공주가 탄생하길, 더 많은 의도적인 노력이 진행되길 기대해본다.

<지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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