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주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인류 초유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재분배방식을 실험 중이다. ‘재난 기본소득이라는 이른바 기본소득방식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재분배 방식은 이미 다른 많은 국가에서 부분적으로 실험되고, 한국에서도 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에 의해 그 비전이 꾸준히 제시되고 있다.

  기본소득이 국내외에서 큰 관심거리가 된 까닭은 노동지위 하락, 불평등 심화, 그리고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기본소득의 특성 세 가지를 말한다면, 보편성·무조건성·개별성이다. 보편성은 선별적이고 시혜적인 복지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누구에게나 지급한다는 뜻이며, 무조건성은 사회기여·자산·직업·소득 등 그 어떤 조건도 묻지 않고 지급한다는 뜻이다. 개별성은 가족이나 가구 단위가 아니라 모든 개인에게 지급된다는 의미다.

  기본소득의 제안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분배의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품고 있다. 무엇보다 공유재에 대한 생각이다. 지구 및 생태계가 인류의 공유자산이며, 한 나라의 부 역시 이전 세대들의 기여로부터 발생한 집단 공유자산이다. 공유자산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분배되어, 모두의 동등한 존엄성과 불가침적 생존권을 보장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기존 분배정책은 노동소득(1차 분배)을 중심에 두고, 소득이 없는 사람들에게 시혜적인 복지(2차 분배)를 분배하는 방식이다. 이런 정책은 양극화 심화를 예방하지 못했다. 이에 대하여 기본소득은 공유재를 기초로 노동 중심의 분배에서 보편복지를 향한 분배로 전환할 것을 주장한다.

  이런 좋은 아이디어도 분배정의를 위해 더 숙고해야 할 중요한 사안들이 있다. 하나는 노동과 소득의 관계이며, 다른 하나는 공유자산의 분배방식이다. 이 둘은 하나의 문제로 엮여 있지만, 이 지면에서는 노동과 기본소득과의 관계를 짧게 논해보고자 한다. 현대사회에서 노동은 생존유지를 위한 강제적 수단이지만, 본디 노동이란 인간 존재의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탈노동주의는 강제적 수단인 노동에 대한 해방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노동, 곧 시장에서의 일자리는 1·2차 산업혁명 때처럼 무한정 창출될 수 없다. 기술 발달로 사회적 필요노동 시간은 점차 줄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은 무엇이 되어야 하며, 소득은 어떻게 분배되어야 할까? 산업사회에서 노동은 시장의 생산력 가치로 인식되어 왔다. 이제 노동은 사회적 가치로 인식되어져야 한다. “가사노동에게 임금을(G.Caffentzis)” 이라는 말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비임금 재생산 노동이 있는지 알려준다. 공짜노동으로 인식되던 노동은 사회를 재생산하는데 기여한다. 예술, 문화, 비영리단체 활동 등이다. 노동은 더 이상 시장에서의 생산활동만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활동으로도 인식되어야 한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결과는 삶의 질 향상에서 긍정적이었지만, 취업률 증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기본소득이 사람을 강제적 노동으로부터 해방하여 존엄과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자유롭고 새로운 노동을 창출하는 고민도 함께해야 한다. 공짜노동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한다면, 농업과 같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노동의 가치를 높이 인정한다면, 기본소득 대신 사회참여 소득같은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의 1차 재난기본소득은 임시방편이 되었지만, 그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재난 지원금이어야 했다. 현금 분배가 고소득층에 가장 많이 배분되었다는 보고도 나왔으니 말이다. 공유자산은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이어야 하지만, 정의롭고 효율적으로 배분되기 위해서는 노동의 방식과 다양한 가치들, 그리고 소득분위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이 아니라면, 현금 배분보다는 공공부조를 줄이고 사회보험 및 사회서비스의 대상 범위를 넓혀가는 보편복지정책이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포함되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본소득은 그 목표와는 달리, 노동개혁과 사회복지제도를 모두 현금으로 대체하는 신자유주적 기획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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