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르츠 캔디 버스> 박상수

  글이라는 건 기억의 묘사이지만 시인 박상수의 글은 유독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느껴진다. 가물가물했던 기억을 지금 바로 내 앞에 가져와, 그때의 습도, 소리, 느낌을 상기시킨다. 이 시집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눅눅하다. 더운데 심지어 습하기까지한 여름. 시인 박상수는 자꾸 남겨진 기억들과 장소의 단어들로 장마철 빨래만큼이나 눅눅한 기억들을 꺼낸다.

  “제트 열차는 붐붐 길고 긴 트랙을 돌아 사라지고 어느새 내 곁엔 부서진 꽃잎과 같은 것이 플라스틱 잔해 같은 것이, (후략)” - <놀이공원 가자>

  즐거운 순간은 언젠가 떠나고, 그 시간은 파편으로 기억 속에 남는다. 화자는 어느 놀이기구에도 타지 않은 채 회전목마 위를 바라보기도 하고, 열차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화자에게서 멀어졌지만, 결국 어느 것도 떠나지 않고 회전목마 위 구름처럼 그 주변을 맴도는 흔적으로, 또 분위기로 남아있다.

  “열정을 탕진한 이들 소파에 파묻혀 있는 곳, (중략) 혹자는 이곳이 움직인다고도 한다. 다녀온 사람마다 가는 길이 다른 곳,” -<카페 WILL>

  미래로 가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현재를 이어서 가는 것과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한 번에 가는 것. <카페 WILL>은 후자라고 생각한다. 타임머신이 개발되었다는 괴담처럼, ‘찾을 수 없는 곳이지만 다녀온 사람만이 존재하는 곳’. 남김없이 열정을 쏟아낸 사람들이 몸을 웅크리고 카페에 파묻혀 있다. 알지 못하기에 매력이 있는 미래에 다녀온다면 우리는 어떤 기억을 쏟아낼까.

  “내 손바닥 위에 캔디를 올려놓을 때/ 떠오르던 의문과 돌아봄, 망설임까지/ 어느덧 그것들이 단맛에 녹아 버스 안을 채워나갈 때 (후략)” - <후르츠 캔디 버스>

  낯선 사람이 내 시선을 끄는 그때, 설탕이 약간 묻은 후르츠 캔디가 내 손바닥 위에 얹어진 그 순간.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두근거리는 순간이 있다. 3월의 햇살에 약간 녹아버렸을 사탕은 꼭 눈부시던 모든 순간의 기억같다. 누구나 겪었을 낯선 감정과 설레는 감정을 흔들리는 버스와 사탕의 이미지로 나타내는 것이 시인 박상수의 표현법이다.

  세계의 일부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인 박상수는 모두가 한 번쯤 스쳤던 개울가로 우리를 불러낸다. 모르고 발을 빠뜨렸던 소녀소년 시절의 우리를 보여주기도 하고, 골목 어딘가를 비춰 보여주기도 한다. 같은 학교에 다닌 것도, 같은 버스를 탄 것도 아닌데 우리는 꼭 한 순간쯤은 겹쳤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기억이 체험으로 변모하는 그 순간을 이 시집을 읽는 동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강나현(미디어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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