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고쿠 나쓰히코 항설백물어
<항설백물어>
교고쿠 나쓰히코 

 

  백물어(百物語)는 에도 시대, 일본에서 유행하던 놀이 중 하나이다. 직역하면 백 가지 이야기인 이 놀이는, 촛불 백 개를 켜놓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괴담을 이야기하는 놀이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소설 <항설백물어>는 백물어에서 느낄 법한 섬뜩하고 스산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항설백물어>가 그토록 서늘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인 이유는 귀신이나 요괴가 나와서가 아니다.

  <항설백물어>가 서늘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이유는, 귀신이나 요괴보다도 훨씬 무서운 존재는 바로 인간이라는 암시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항설백물어>는 일본의 기담집에 등장하는 유명한 괴담들을 차용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괴담들의 배후에는 표면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힘이 아닌 인간들의 탐욕이 숨어 있다는 가정하에 전개된다. 당시 시대 배경은 에도 시대, 전국 시대보다는 훨씬 평화로워진 시대이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최첨단 의학이나 과학 기술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었다.

  그래서 <항설백물어>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제대로 진상이 밝혀지지 못한 사건들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처리해 나간다. ‘악은 그보다 한 수 위인 악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가 그들의 신조다.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야 하지만, 악인들의 경우에는 전혀 법도 도리도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법이 아닌 악 앞에서라면, 문제가 달라진다는 것을 주인공들은 알고 있다.

  <항설백물어>가 흥미로운 점은, 비록 악인들을 처벌하고는 있지만 주인공들도 완전히 선한 인물들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분명 악인들에 대한 취약한 법이나 무능한 관리들을 대신한 단죄라 할 수 있지만, 그들은 흠결 없는 선량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의 이미지는 정의의 사도보다는, 오히려 살인 청부업자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피해자의 억울함과 한을 풀어주기보다는 이라는, 현실적인 것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는 이들을 하지만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다. 주인공들은 어쨌든 악한을 처벌하기 위해서, 악한들보다 한수 위인 악을 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악인들이다.

  주인공들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사건의 진상을 알면서도 밝히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셜록 홈스>의 주인공 홈스가 이따금 가해자가 된 피해자들의 진상을 눈감아 줬듯이, <항설백물어>소악당패거리는 사건의 배후는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는 암시를 흘려, 이에 대한 소문이 자연스럽게 퍼지도록 한다. 교묘하게 소문을 퍼뜨림으로써 사건이 기담의 재현일 뿐이라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비극이 요괴나 귀신이 등장하는 그 어떤 섬뜩한 괴담보다도 더 무섭다는 것을, 그러니 그것을 굳이 선량한 인간들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진(문과대 언어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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