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위로하고

감싸주는 노래를

매일 들려주고 싶습니다"

류철민 PD는 청취자와 소통했던 매 순간이 소중했다고 말했다.
류철민 PD는 "청취자와 소통했던 매 순간이 소중했다"고 말했다.

  처음 콘솔을 잡았을 때의 떨림은 사라지고, 익숙함이 그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다. < 이준의 영스트리트> 생방송까지 두 시간을 앞둔 상황. 류철민 PD의 표정은 차분했다. 휴대폰 마이크를 켜고 녹음을 시작한다.

  ‘고대신문 12FM, 사람들 코너입니다. 벌써 입사 14년 차지만 라디오와 음악을 향한 열정은 여전한 분이죠. 오늘의 스페셜 게스트, 류철민 SBS 라디오 PD님 모시겠습니다. 지금부터 주파수 고정아니, 시선 고정입니다.’

 

공대생, 늦깎이 PD가 되다

  0.5점과 0.7, 압도적 투고(학사경고 두번)를 맞고 도망치듯 입대한 인천 해안경계부대에서 처음 PD의 꿈을 꿨다. 해질 때 초소에 들어가 해 뜰 때 나오는 야간 경계근무는 항상 탄피 통에 숨겨온 소형 라디오와 함께였다. “하루는 스코틀랜드 밴드 Travis‘Turn’이라는 음악이 나오고 있었어요. 그때 저기 앞에 중대장이 제 초소를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는데, 저는 그걸 끝까지 듣고 싶은 거예요.” 지금이야 원하는 곡을 언제든지 들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 노래를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끝까지 듣고 나서야 허겁지겁 라디오를 숨긴 그때 내가 이렇게 음악을 좋아했나?’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그를 방송의 길로 이끌었다.

  막상 제대 후에는 전공 공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창 과도관에서 열심히 공부할 때는 수학이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였는데, 졸업을 앞두곤 방송인의 꿈을 못 버리겠더라고요.” 언론고시 준비를 갓 시작한 스물여섯 공대생을 받아주는 스터디는 없었다. “결국은 같은 꿈을 꾸던 과 동기랑 둘이서 작문이니 상식이니 무작정 공부를 시작했어요.”

  2년 만에 MBC PD 최종면접이라는 문턱까지 갔지만, 결과는 낙방. 여태 한 게 아까워 1년 더 도전한 결과 역시 참담했다. 어느새 나이는 서른. 취업 상한선에 다다라 여기저기 대기업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다. 그 와중에 불현듯 깨달음을 얻었다. “면접에 같이 들어간 친구는 거기 들어가고 싶어서 손을 벌벌 떨고 있는데, 저는 아 짜증 나네, 작년에 됐어야 되는데하고 있으니 태도부터 차이가 나잖아요. 당연히 간절한 사람을 뽑지, 붙든 지 말든지 상관없어하는 지원자는 저라도 안 뽑을 것 같더라고요.” 되든 안 되든 마지막으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한 SBS 교양국 PD시험에서 결국 역대 최고령 신입사원타이틀을 따내고야 말았다.

 

교양의 긴장, 라디오의 일상

  입사 이후 6년 동안 교양국 프로그램을 쭉 돌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TV 동물농장>, <모닝와이드>, <궁금한 이야기 Y>까지. 심지어는 <SBS 스페셜>AD(조연출)로 에베레스트까지 올라갔다. 그는 교양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으로 <궁금한 이야기 Y> 시절 보성 형제교회 유아사망사건' 취재를 떠올렸다. “사이비 목사 부부였어요. 자기 아이들 3명이 자기 교리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매질하다가 죽었는데, 애들이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신을 그대로 방에 두고 기도 올리면서 일상생활을 한 거예요.” 범죄 재연 당시 수많은 취재진 앞을 지나가던 목사에게 그도 한마디를 던졌다. “취재해보니까 부부가 아이들을 되게 아끼고 사랑했다는 거예요.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하셨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 겁니까?’라고 물었어요. 그때까지 아무 말 없던 목사가 제 말에 무너져서 흐느끼며 돌아갔던 게 기억에 남아요.” 사랑의 잘못된 발현이 낳게 된 비극, 문득 사람이라는 존재가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입사 연도에 라디오 PD를 뽑지 않아 교양국으로 들어왔지만, 마음 한편에는 항상 라디오를 향한 열망이 남아있었다. 입사 6년 차, 라디오국이 잠시 제작본부에 소속되면서 부서 명령으로 소속을 옮길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없을 기회라는 생각에 제작본부장에게 독대를 요청했다. “, 안 보내주시면 사표 쓰겠습니다.”

  “사실 그럴 생각 하나도 없이 들어갔는데 말하다 보니까 간절해진 거예요.” 거기서 적응 못하면 PD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엄포를 듣고서야 다음 날 라디오국으로 갈 수 있었다. 이후 류철민 PD가 런칭한 황교익, 강헌의 맛있는 라디오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는 각각 한국PD협회 이달의 PD한국방송대상 연예오락 라디오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젠 라디오에서 보낸 시간이 더 길어졌지만, 여전히 강렬한 기억은 교양 PD 시절이 더 많다. “라디오는 일상이에요. 매일 청취자하고 호흡하는 방송이죠. 반면에 시사교양에서는 나를 반겨 줄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을 만나야 해요. 이들에게서 뭔가를 알아내고 밝혀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세대마다 공유하는 음악은 다르지만

  음악은 라디오 PD의 분신이다. 선곡할 때는 당연하고, 원고를 볼 때도 항상 음악을 듣는다. 소속사 매니저들이 가져다주는 공짜 CD와 남들보다 먼저 신곡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PD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다.너무 좋아요. 맨날 노래도 누구보다 먼저 접할 수 있고, 그걸 내 자리에서 월급 받으면서 3시간씩 가만히 듣고 있어도 누가 뭐라하기는커녕 이 친구 열심히 하네!’ 이런 말 들을 수 있는 직업이 또 어디 있겠어요?”

  류철민 PD90년대 브릿팝의 선두주자였던 밴드 Blur의 노래를 가끔 트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랑 같은 세대를 공유한 사람들은 좋겠지만 지금 세대들은 Blur를 전혀 모른단 말이에요. 제 선곡을 그들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가 모두에게 최고는 아닐 수 있다. 좋은 선곡을 위해 매번 명심한다. “10년 전 샤이니의 링딩동이 처음 나왔을 때 다들 이게 무슨 가사야!’ 놀렸는데, 이제 링딩동 가사 웃긴다는 사람들 별로 없어요. 오히려 아이돌 노래의 클래식으로 칭송받죠. 지금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음악을 항상 존중하려고 노력해요.”

  그는 청취자와 소통했던 매 순간이 소중했다고 말했다. 슬픈 사연을 같이 읽고 제작진도, 디제이도 같이 울었던 순간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 댓글이 쉴 새 없이 올라올 때 보면 라디오는 아직 따뜻한 매체라는 걸 느껴요. 그럴 때면 우리가 세상의 아픔을 단 1그램이라도 덜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극적인 건 없지만 매일 조금씩 다가가는, 그런 거죠.”

 

목표는 정년까지 생방송'

  그가 입사했던 200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라디오의 위기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이었다. 그는 라디오 DJ의 음악 추천이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보다 떨어지게 되는 순간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우리가 Blur‘Song 2’를 소개하면서 이 노래만 들으면 경기장에 온 것 같고 축구를 하고 싶어지죠!’라고 스토리를 더해 이야기를 해주잖아요. 이건 유튜브 인공지능이 네가 듣던 거랑 비슷한 곡들도 한번 들어봐라고 추천해주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그 의미마저 퇴색될 때가 걱정되는 거죠.”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두 손에 자유를 주는 오디오 매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 저작권 사용이나 고전 매체의 공신력도 저희가 유튜브 채널에 비해가질 수 있는 장점이죠. 저희도 보이는 라디오를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고, 공생도 가능하다 생각해요.”

  PD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소박했다. 정년퇴직하는 전날까지 즐겁게 생방송을 진행하는 것. “저도 말년이 되면 핵심 프로그램은 후배들에게 양보하겠죠. 심야든 뭐든, 어떤 프로그램도 재밌게 할 거예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았던 트로트도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처럼 제가 흥미 없던 장르도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PD가 되고 싶습니다. 그게 트로트든 클래식이든 상관없이요.”

 

  ‘류철민 PD와 함께한 사람들 코너, 벌써 마무리할 시간이네요. 너무 아쉽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캠퍼스에 나오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오늘 엔딩곡으로 학생들에게 들려주고픈 노래 하나만 류 PD님께 선곡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프롬 씨의 노래 달의 뒤편으로 와요이걸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서로 볼 수 없는 달의 뒤편에 선 것 같은 시기지만, 이곳에서 서로 위로해주고 감싸줄 수 있는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글│천양우 기자 thousand@
사진│박소정 기자 chocop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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