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 늘었지만, 손님·상인 모두 불안한 시장
인파 늘었지만, 손님·상인 모두 불안한 시장
  • 최낙준 기자
  • 승인 2020.09.19 23: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석 앞둔 전통시장, 마스크 속 울상··· “문 열기도 싫다”

사람 늘어도, 매출은 바닥

먹자골목 상인들 타격 커

인건비 부담에 종업원 감축

 

  “사과 10개에 만원, 4개는 5000, 싸게 골라가세요.” 16일 오후 3시께 찾은 동대문구 청량리농수산물시장은 장을 보는 인파로 가득했다. 차가 나다닐 만큼 넓은 길에서도 행인들은 소매를 연신 맞부딪혔다. 상인들은 가게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13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완화한 뒤, 추석 대목을 앞두고 대다수의 상인은 영업을 재개했다. 16일과 18일에 걸쳐 찾은 청량리농수산물시장, 경동시장, 종로구 광장시장에는 문 닫은 점포가 드물었다. 하지만 손님이 늘었다는 일부의 관측에도 상인들은 체감하는 매출 상승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살 것만 사러 왔어요
16일, 추석을 앞둔 청량리 농수산물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살 것만 사고 휙

  매출은 시장과 거리두기 중

  “뭐 드릴까, ?” 청량리농수산물시장의 상인들은 가격을 확인하려 발걸음을 늦추는 손님을 애써 붙잡았다. 하지만 마스크를 눈가까지 올린 행인들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코로나에 예민한 편이 아니라는 50대 여성은 살 것만 사려고 어쩔 수 없이 나왔다며 고개를 재빨리 돌렸다.

  경동시장 청년몰에서 강정을 만드는 박승우(·22) 씨는 최근 매출이 늘었지만, 대부분이 인터넷으로 예약해서 물건만 받고 바로 간다고 토로했다. 시장을 둘러보면서 물건을 살피는 사람들은 여전히 적다고 했다. 박 씨는 명부작성도 확실하지 않아 사람들이 둘러보기에는 불안해 할 것이라며 배달이나 인터넷 주문을 받지 못하는 식당들은 하나같이 매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식당들이 들어선 상가 지하에서는 빈 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주인 모를 짐들이 쌓여있었다. 군데군데 조명이 꺼진 탓에 햇빛이 들지 않는 상가는 더 어두웠다. 생활정보 방송에 여러 차례 전파를 탄 국숫집이 빈 좌판들 사이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도 손님이 이렇게 없는데 다른 집은.” 15년째 국숫집을 운영하는 이재호(·52) 씨는 말끝을 흐렸다. 점심이지만 좌판에는 막 식사를 마친 손님 한둘이 일어서고 있었다. 이 씨는 원래 이 시간이면 사람들이 줄을 섰다손님이 60%는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출입명부 작성을 거부하며 가게를 떠나는 손님도 있다. 이재호 씨는 어제만 두 명이 명부를 쓰지 않겠다고 가게를 나갔다명부를 악의적으로 활용하는 한두 사람 때문에 손님들이 예민해졌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마스크 쓴 채 매대 주변을 보고 있다.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

  먹자골목과 대규모 식당가가 위치한 광장시장에는 앞치마를 두른 상인들이 손님이 떠난 자리를 심심하게 채우고 있었다. 맑게 갠 날씨에 좁은 골목에는 이따금 행인들이 지나다녔지만, 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손님은 극소수였다.

 

14일, 점심시간 경동시장 상가 지하 식당가가 한산하다.
경동시장의 한 골목, 매장 사이 통행로에는 행인이 드물었다.

 

  “오늘은 진짜 나오기 싫었어. 자기가 첫 손님이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최은재(·52) 씨는 계란을 서비스로 얹어주며 애써 웃어 보였다. 최은재 씨는 어제 거스름돈으로 가게에 돈을 챙겨왔는데, 물건 값만 치르다보니 집에 갈 때는 되려 줄어있었다돈이 없는지 사람들이 명절이라고 왔다가 쳐다만 보고 간다고 말했다.

  비닐봉지를 양손 가득 들고 있던 행인들은 길 가운데 놓인 손 소독제를 빠르게 지나쳐갔다. 최은재 씨는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여러 번 고쳐 썼다. 외국인도 즐겨 찾는 관광지인 광장시장에서 코로나19 감염 불안은 생계의 위협과 직결된다. “우리 시장은 방역도 철저하고 마스크도 다들 잘 써. 상인회에서 주변 거지들까지 파악해서 코로나19 음성을 확인했어.” 최 씨는 시장 근처에서 재난문자를 받은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광장시장 사거리 가운데 손 소독제가 놓여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이후 영업을 재개한 상인들은 여전히 한산한 거리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식집 반대편 모퉁이에서 7년째 생과일주스를 팔고 있는 김모 씨는 가게 문을 오래 닫으면 그나마 오는 단골도 없어진다여러 가게가 한꺼번에 닫으면 음산해서 손님들이 안 오니까 일단 다들 나와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상인들은 매출 감소와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김모 씨는 매출도 줄었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수입 과일이 비싸지면서 남는 게 없다고 밝혔다. 그의 수입은 작년 월 200만 원에서 올해 8월에는 20만 원까지 줄어들었다. 김 씨는 추석이지만 현상유지만 해도 다행이다며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김 씨가 매주 과일을 떼어온다는 청량리 농수산물시장의 상인들도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었다. 청량리에서 도소매로 밤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추석이 다가오면서 소매는 풀리는 거 같은데 문제는 도매다. 전체적으로 장사가 안 되긴 하나보다고 한탄했다.

 

  줄일 수 있는 건 인건비 뿐

  상인들은 이 같은 어려움이 오늘내일의 일을 넘어설까 두렵다. ···4개국 언어로 생과일주스 메뉴판을 걸어놓은 김 씨지만, 가게에서 외국인 구경을 못 한지도 꽤 됐다. “2월부터 중국인, 일본인을 차례로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주말에 과일을 깎아주던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을 쉬라고 한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상인들에겐 다달이 나가는 임대료가 큰 부담이다. 광장시장에서 10년째 전집을 운영하는 오광덕 씨는 가게를 닫으면 월세가 의미 없이 나가고, 가게를 열면 월세에 인건비까지 든다결국 줄일 건 인건비밖에 없다고 말했다. “종업원 세 명 중 한 명한테 반강제로 휴가를 줬어요.” 오 씨는 텅 빈 가게를 둘러봤다.

  오광덕 사장도 새로운 직원을 구할 때가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이 주춤한 6, 7월 무렵이다. 오 씨는 신문 구인광고를 하루 냈는데 전화를 60통 가까이 받았다면접 본 10명 모두 사연을 들어보면 일하던 가게가 망해서 왔다고 했다고 전했다. “뉴스로만 보다가 실제로 만나보니 확 실감이 났죠.” 오광덕 씨는 장사를 시작한 2010년 이래 최악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모를 따라 광장시장에서 나고 자랐다는 분식집 최은재 사장도 최근에는 장사에 의욕을 잃었다고 토로했다. “한창때는 성균관대에서 축제를 열어서 학생들이 떡볶이를 10만원어치씩 사가고 그랬어. 요새는 그런 것도 못 하는 세월이 돼서. 그래도 필요하면 연락해요.” 최 씨가 서랍 한구석에서 때가 탄 명함을 꺼내며 말했다.

 

글 | 최낙준 기자 choigo@

사진 | 박상곤·최낙준 기자 press@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