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를 잡고, 활을 대면 희망이 켜집니다
악기를 잡고, 활을 대면 희망이 켜집니다
  • 이성혜 기자
  • 승인 2020.09.20 0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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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예술단 김종훈 음악감독 인터뷰
김종훈 음악감독과 한빛예술단 단원들은 소리만으로 호흡을 맞춘다.
김종훈 음악감독과 한빛예술단 단원들은 소리만으로 호흡을 맞춘다.

 

  장애는 인간의 꿈에 있어 제약이 될까. “시각장애인이 잘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음악이에요.” 시각장애인은 청각이 예민하다. 음악을 대하는 감각도 그렇다. 시각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52) 씨의 연주가 더욱 감동적인 이유다.

  주어진 환경을 보완할 방법을 고민한다는 그는 시각장애 연주가도 정안인(正眼人)과 같은 예술가라 말했다.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 한빛예술단에서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는 김종훈 씨가 암전 속에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초등학교 때 바이올린을 처음 접했다. 악기에서 처음 접한 감각은 촉각이었다. “장난감처럼 품에 쏙 들어오는 바이올린을 인형처럼 껴안곤 했어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바이올린을 만졌는데 구석구석 만져보니 신기한 거예요. 활을 써서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악보도 보게 됐죠.”

  저시력인 그가 악보를 보는 게 어려울 때마다 어머니가 크게 악보를 그려주었다. “공부하는 곡마다 달력 뒷장에 매직펜으로 크게 악보를 그려주셨어요. 그걸 보면서 악보를 익혔어요.”

  보지 못한다는 것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음악의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활을 쓰는 데 고도의 기술이 요구됐다. “벽에 부딪히는 거예요. 볼 수 있다면 거울을 보고 활을 교정하거나 다른 연주자들의 동작, 손놀림을 보며 배우면 되는데, 그럴 수 없어 소리와 감각에 더 집중했어요.”

- 연주에서 소리와 감각에만 집중하는 방법은

  “악기를 잡고, 활을 현에 천천히 대며 감각을 느껴보는 거예요. 현을 살짝만 건드려도 소리가 나니까 섬세하게 활을 대야 해요. 왼손으로는 활과 현의 거리와 각도를 만져보면서 확인을 해요. 몇 센치가 떨어져 있는지, 각도는 어느 정도인지. 오른손으로는 활을 현에 대기 전, 공중에서 떨어지는 동작을 반복하는 거죠. 보잉 테크닉을 익히기 위해서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고, 활이 부자연스러울 땐 오른손을 집중적으로 연습해요.”

  이 방법은 그가 한빛예술단의 단원들을 지도하는 데도 쓰인다. 그는 제자들에게 열심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각장애인들도 열심히 하면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고, 좋은 음악가가 될 수 있어요. 장애의 유무를 떠나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된다는 거죠.”

- 전달하려는 음악적 메시지는 어떻게 찾나

  “공연을 통해 전달하려는 스토리를 연구하는 과정에 많은 고민을 해요.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음표만 중요하게 보면 디테일을 다 놓칠 수도 있어요. 정안인들도 마찬가지예요. 연주 기술이 좋다는 것은 악보에 있는 정보를 소리로 잘 표현한다는 건데 세심한 일이긴 해요. ‘스타카토’, ‘악센트등 주법을 잘 살려 표현하는 게 실력이죠.”

 

- 한빛예술단의 연습은 어떻게 진행하나

  “먼저 파트를 나눠 연습을 시키고, 연습이 끝나면 합주를 해요. 파트별로 연습을 할 땐 활의 길이, 위치를 세세하게 맞추고, 합주 시에는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을 위해 노력해요. 섬세하게 잡아주는 건 아내가 도와주고, 제가 단원들을 이끌어요.”

  단원들의 자세 하나하나를 잡아주는 건 아내 김영아(·46) 씨의 몫이다. 정안인인 그녀는 김종훈 씨가 놓친 시각의 영역을 책임진다. “오케스트라를 맡아달라고 제안이 왔을 때 혼자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죠.” 김종훈 씨 부부는 2014년에 한빛예술단에 함께 입단했다.

  “우리는 듣는 훈련이 중요해서 녹음본을 계속 들으면서 복습해요. 사람마다 음의 모양, 소리, 발음이 다 다르잖아요. 합주를 할 때 서로의 박자와 속도, 리듬을 맞추기 위해 중요한 파트를 계속 들으면서 음 하나하나를 명확하게 내도록 연습해요. 그런 과정이 모이고 모여서 실제 공연에서 활도 잘 맞고, 연주의 흐름도 조화롭게 흘러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연습 끝에 무대의 막이 오르면, 공연은 시작된다. 한빛예술단의 무대에는 악보와 지휘자가 없다. 시각장애인 단원들에게 지휘는 눈이 아닌 귀로 듣는 것이다. 연주자들은 이어폰을 꼽고 지휘자의 음성을 듣는다. 지휘자로 나선 김종훈 음악감독은 입으로 소리를 내며 단원들을 지휘한다.

  “클래식음악은 느려졌다 빨라졌다 하잖아요. 연주 속도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지시를 합니다. 그간 여러 가지를 시도했어요. 단원들의 연주감을 이끌기 위해 동물의 울음소리나 사물이 움직임에 비유하기도 하고, 음악의 리듬감을 익히기 위해 가사를 붙이기도 했죠. 연주 중에 다양한 지시를 합니다. 중간 중간 숨도 쉬어주고 추임새처럼 싸인을 해요. ‘어이’, ‘영차!’ 이런 식으로(웃음).”

  지휘가 다가 아니다. 지휘봉이 없는 지휘자의 손엔 바이올린이 들려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동시에 지휘를 하는 김종훈 음악감독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동시에 지휘를 하는 김종훈 음악감독

- 공연 중에 지휘와 연주가 동시에 가능한가

  “그럼요.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입으로 지휘도 하죠. 공연할 땐 머리가 바빠요. 음악에 몰입할 땐 몰랐는데 공연 끝나고 보면 신기할 때가 있어요. 정안인들은 우리가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단원들은 서로의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잖아요.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전하고픈 메시지를 혼신의 힘으로 표현할 때면 그 감정이 전달되는 것 같아요. 단원들도 덩달아 연주에 혼을 담아요. 관객들도 그런 무대에 더 공감을 보내주시죠.”

  그렇게 연 100회 가까이 공연을 하며 관객에게 감동을 전하는 게 한빛예술단의 일이지만, 코로나19로 강제적인 휴식기가 찾아온 상황이다. “관객앞에서 공연을 할 수 없는 시기지만 이 시간들을 유용하게 쓰려고 해요. 다시 관객들을 만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때를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야죠.”

  연주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전하는 것. 김종훈 씨는 그것이 음악가로서 최고의 보람이라 했다. “살면서 방향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되고 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집중하면 인생이 바뀌더라고요. 우리 모두 희망을 지켜내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이성혜기자 seaurchin@

사진제공한빛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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