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대 글로벌대 교수·한국학전공
유영대 글로벌대 교수·한국학전공

 

 

공연예술은 태초로부터 있어왔고, 그 공연의 주연은 관객이었다. 전통적인 판소리 공연은 시장판이나 야외 마당에서 열렸다. 마당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다 보니, 광대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목청을 크게 낼 수밖에 없었고, 목청이 큰 것이 광대의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모흥갑 명창은 목청이 크기로 소문이 났다. 그가 목덜미에서 소리를 질러내면 십리 바깥에 있는 사람도, ‘, 오늘 모흥갑이 소리하는구나라고 알았다. 다행히도 모흥갑이 판소리 부르는 그림이 남아있어서 그 정황을 생생하게 구성해볼 수 있다. 모흥갑은 평양 능라도 마당에서 양반층 관객들에 둘러싸서 공연을 펼쳤다. 모흥갑이 부른 소리의 실체는 남아있지 않지만, 이 그림을 통해 그이의 소리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다. 관객은 모두 두루마기에 갓을 쓴 양반들이다.

명창 방만춘이 양반집 사랑채에서 <적벽가> ‘불지르는 대목을 연행했던 상황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관객들은 명창이 자신의 눈앞에서 소리하는 모습을 보고, 그가 부르는 소리의 내용을 들으면서, <적벽가>의 장엄한 서사 분위기에 빠져들어 갔다. 방만춘의 소리를 들어가노라니 자신의 주변에 바닷물이 출렁대고, 천지가 불타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적벽강 조조 선단이 불붙어 주변이 환하게 타오르자, 관객들의 얼굴도 지지벌건해질 정도로 달아올랐다고 전해온다. 우리가 지금 방만춘의 소리판에 있지는 않지만, 기록을 통하여 이 소리판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공연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드는 예술이다. 명창과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나누는 특유의 공감이, 공연하는 동안 내내 긴장과 밀도를 유지해간다. 명창의 공연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외와 존경심이 있고, 공감하면서 탄식하고 추임새를 하는 관객의 태도에 따라 공연은 격조있게 고양된다. 공연은 명창이 이끌어가고, 관객은 그 공연을 뒤에서 밀어준다. 공연예술은 역사적 유일성과 진품성이 있어서, 바로 그 공연에서만 가질 수 있는 명창과 관객의 사이에 공유하는 분위기나 후광이 있게 된다. 어떤 공연도 일회적인 것이다. ‘그때 그장소가 주는 감동은, 함께 했던 관객에게만 생생하게 각인된다. 그리고 그렇게 각인된 기억을 가진 관객이 남긴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그 공연의 실체를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공연이란 것은 세상에 한번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비복제성의 예술작품이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어야만 참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공연예술의 특징이다. 명창은 자신이 설 무대의 관객이 어떤 수준인지를 미리 짐작하고, 관객과의 소통방식을 미리 생각해둔다고 한다. 안숙선 명창은 무대에 나서기 전에 소리판의 관객의 수준을 미리 가늠하여 그날 부를 단가를 선택한다고 한다. ‘이산저산을 불러야 환호하는 관객이 있는 무대가 있고, ‘적벽부를 부를 때 추임새를 넣는 관객이 많은 무대가 있으며, 이 두 무대는 서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단가를 부르는 순간부터 공연이 시작되며, 관객의 반응에 따라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춘향가>를 불러나갈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관객과 명창이 이런 방식으로 서로 긴장을 확인하는 그 순간부터 아우라가 생겨난다.

탁월한 역량을 가진 광대는 자기가 처해있는 공연의 상황과 판의 의미를 고려하여, 사설의 서사적 짜임새를 변개시키거나 순식간에 새로운 악곡을 창작하여, 판을 장악하기도 한다. 이미 확고하게 짜인 서사구조에 일정한 삽화를 쉽게 첨가시키거나 곡조도 바꿔 즉흥적으로 가창하여 판을 장악하는 것은 관객의 열광적 태도를 반영할 수 있는 광대의 탁월한 능력에 의하여 가능하다. 관객은 관객대로, 명창이 자신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그나 처음 꺼내는 단가를 들으면서 가늠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공연은 그 현장에서 관객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서 추임새를 하면서, 그것이 비로소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지금 공연예술은 현장을 잃어버렸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과 공연예술을 제약하고 있다. 세상은 코로나 이전코로나 이후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었다.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이것이 일상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좋든 싫든 공연예술의 현장을 다른 방식으로 모색해야만 되는 시대가 되었다. 분리된 객석을 통해서 옆자리를 비운 채 공연을 보면서, 특히 앞으로의 공연예술의 향방이 어떻게 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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