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인간의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텔레비전에 나와 거짓말 하는 높은 곳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조금 찔리고 부끄럽기도 하겠지. 아니면 정말 전혀 그런 마음 1도 안 들까를 생각한다.

  나는 부끄럽다는 감정이 인간 세상을 유지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나 양심이나 이런 것은 너무 거창하고 멀리 있는 느낌이다.

  내가 선명히 갖고 있는 부끄러움의 기억은 대학 3학년 때 들었던 절대평가 수업에서 생겼다. 상대평가가 아니다 보니 관심을 덜 뒀고, 시험은 그럭저럭 과제도 그냥저냥 했다. 그러면서도 최소한 B+ 잘하면 A 이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B가 나왔다. C+는 웬만해서는 잘 안 준다고 알려진 수업이어서 사실상 최하 점수다.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 C+로 내려주시면 재수강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루 뒤 답이 왔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면 성적이 나오기 전에 재수강 할 수 있는 학점을 달라고 했어야지. 성적이 나온 뒤에 요청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아. 자네는 그저 요행을 바란 것이 아닌가?” 성적은 바뀌지 않았고, 졸업 때까지 교수님을 피해 다녔다. 싫어서가 아니라 부끄럽고 창피해서.

  10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지금도 문득문득 C+로 변하지 못한 B가 떠오른다. 사실 교수님이 내게 줬던 최종 점수는 D일 것이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게 B로 보이면 거기에 부끄럽고 창피하길 바람을 더해보자. 그러면 D가 된다.”

  메일 보낸 걸 후회하고 자책하지만, 이 경험은 내게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었다. 원하는 결과만큼 노력했는지, 요행을 바랐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이런 기준은 좋은 결과를 내는 데 보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를 스스로 납득하는 데 특히 도움이 되었다. 때로 다른 사람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질투하고 미워하지 않는 데에도 꽤 도움이 되었다. 부끄러운 마음을 갖고 싶지 않았다.

  이런 태도가 소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더 많은 사람이 부끄러움을 의식하는, 부끄러움이 만연한 세상이면 좋겠다. 어느 지점에서 적극적으로(혹은 뻔뻔하게) 한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오히려 거기가 나에게도 남에게도 더 이로운 위치가 많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세상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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