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부터 24살까지. 10년간 난 다이빙 선수였다. 고등학교는 체고를, 졸업하고 나서는 도청 소속 실업팀 선수로 생활했다. 주종목은 10m 플랫폼 다이빙. 10m 높이의 플랫폼 밑에는 5m 깊이의 수영장이 있었다. 10m의 간격을 공중동작으로 채우는 게 선수의 기량이었다. 앞으로 돌고, 뒤로 돌고, 트위스트에 물구나무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시절, 화려한 동작에 끌려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10m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높았다. 뛰어내릴 능력도 부족했지만, 솔직히 말해 겁이 났다. 내가 물에 입수할 때면, 수영장엔 물보라가 쳤다. 그 요동에 잡아먹힐까 겁도 났다. ‘매일 뛰어내리는데 무섭냐는 장난 섞인 질문에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뛰어내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다이빙 선수. 그 자체로 자괴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곁에 있는 코치의 입장에선 더욱 기가 찰 노릇이었을 거다. 냉정한 스포츠의 세계에서 몸을 사리는 선수는 살아남기 어렵다. 하지만, 선생은 다그치지 않았다. 무섭지 않을 때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며 몇 년 동안 나를 기다려줬다. “겁 많은 것도 능력이지.” 조금은 답답해 하면서도,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줬던 선생의 말이 좋았다. 약점을 꼬집는 대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은퇴 후, 지금은 학생이 됐다. 돌아보니 나는 결국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천천히 마음을 추스르고, 의지를 다잡으면 더 높은 다이빙대 위에서도 거침없이 뛰어내릴 수 있는 선수였다. 만약, 그 시절 선생님이 나를 다그쳤다면, 기록이 오르지 않는다고 겁쟁이라 했다면. 한때나마 관중의 환호,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 아래 힘차게 도약했던 선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 모습을 떠올려 본다면 여전히 빛나는 추억이다. 추억 아래 선생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새긴다. 그대는 나의 은사(恩師).

이성혜 기자 seaur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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