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찬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찬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는 크레타섬에서 탄광을 운영하게 된 주인공이 자유로운 삶을 사는 장년의 노동자 조르바를 만나 벌어지는 일들과 주인공의 사유를 담은 소설이다. ‘자기계발서와 같은 책이라는 김연수 소설가의 소개에 이끌려 이 책을 처음 사 읽었던 날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소설의 도입부처럼 비바람이 불었던 새내기 시절의 여름날, 고등학교 친구들과 떠나는 내일로 여행길 무궁화호 안에서였다. 날씨는 궂었지만, 책은 충분히 흥미로웠고 아프로디테와 제우스의 모습을 한 그리스의 풍경묘사와 조르바가 주는 자유의 가르침에 크레타의 날씨처럼 내 마음도 환하게 개어갔다.

  삶을 사랑하고 싶지만, 열정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주인공에게 조르바는 자유로 향하는 문을 열정으로 열어젖혀 보인다. 실제로 불교에 심취했다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분신인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은 자기 마음속의 공(), 붓다의 말을 글로 써 내려 간다. 조르바는 그런 주인공의 공()을 자유의 축제로 채워나가도록 독촉한다. 조르바의 자유는 공()에서 오는 자유가 아닌 있음의 긍정에서 오는, 존재의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는 자유다.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 삶은 매일이 축제고 신비다.

  나 또한 주인공처럼 그에게 감화됐다. 군대에도 이 책을 가져가 우울할 때마다 몇 번이고 읽었다. 그러면 조르바는 따스한 바람이 불고 노랑 유채꽃이 피는 남해바닷가가 바로 크레타고 너는 여전히 자유롭다고 언제든 내게 말해주었다.

  그러나 군에서 전역한 후 나는 꽤 오랫동안 조르바를 다시 읽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그를 찾았으니 잘된 일이라고 할까. 전역한 후 눈 깜짝할 새 다시 2년이 흘렀고 어느새 내게도 사회로 나가야 할 나이라고들 하는 나이가 왔다. 나는 여전히 내 인생의 책을 꼽으라면 언제든 이 위대한 책을 꼽는다. 하지만 심지가 굳지 못한 탓에 결국 주인공도 그랬던 것처럼 내 내부의 신성한 야만의 소리, 조르바의 외침(‘왜요?’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겁니까?)을 듣지 않고 정중하고 차가운 현실의 논리에 귀 기울일 것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요 근래 조르바의 말이 공허한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나와 꽤 서먹해진 조르바와 카잔차키스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인 셈이다.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펼쳐 든 <그리스인 조르바>.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이라는 조르바의 이별의 말에 언젠가는 자를 거요라고 대답하는 주인공의 대화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언젠가는이라는 말을 되뇌는 것이 꼭 나와 닮아있기 때문일까. 조르바는 마지막으로 이것저것 따지지 않는 바보가 되라는 말을 남긴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란 걸 이제는 안다. 이 책이 평생을 두고 읽는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알 것만 같다.

김영산(정경대 경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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