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에 맞지 않게 웃고, 사람을 죽인 후 춤을 추며, 한참 뒤떨어진 개그 감각을 가진 그.

  작년 이맘때쯤, 영화 <조커>에서 아서와 그의 살인을 따라 하는 고담시민들을 보며 찜찜함을 느꼈다. 다른 세상에 사는 인간. 소통되지 않는 인간. 나와는 다른 세계관을 가졌구나. 처음으로 사람이라는 존재에 이질감이 들었다.

  최근 이 기분을 또 한 번 느껴야 했다. 기안844주 만에 <나 혼자 산다>에 복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그는 다시 <나 혼자 산다>에서 무지하고, 무례하고,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보여줄 터다. 패션쇼장 런웨이 중에 성훈이 형이라 외칠 것이고, 여성 인턴이 성 상납으로 정직원이 됐다는 에피소드도 그릴 것이다. 더러운 숙소를 보고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깨끗하다며 만족하는 장면을 보여줄 거고, 청각장애인은 생각도 어눌하게 한다는 내용의 웹툰도 그릴 거다.

  빗발치는 하차 요구에도 그가 다시 방송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제작자 입장에서 방송의 화제성을 극대화할 문제의 인물이 필요했거나, 혹은 문제없다고 그를 옹호하는 이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기안84가 저지른 기행은 그들이 사는 세상에선 용인된다. 눈치코치 없이 살아가고, ‘바보소리에도 성질내지 않고 웃으면 그렇게 된다. 순박한 그이기에 잦은 논란도 실수반성이면 족하고, 잘 모르기에 어떤 결과물을 내든 으이그하고 받아주면 그만이다. 나도 가지고, 그도 가진 표현의 자유. 이렇게 한번 써본다. 순박함에 가려 혐오와 차별을 분별 못 한 그를, 그를 용인하는 무리를 이해할 수 없다.

  영화의 끝자락에선 불타는 고담시 아래 환호하는 조커와 폭도들이 나온다. 춤을 추는 조커로 시선이 모이지만, 그보다 더 신난 군중들의 존재를 잊어선 안 된다. ‘논두렁이 아름답고 여자들이 실종되는 도시, 기안동에서 살았던 84년생김희민을 방송인 기안84’로 받아들인 그들 말이다. 아직 공감하지 못한, 아니 공감하지 못할 세계임이 틀림없다.

남민서 기자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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