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썬라이즈>

별점: ★★★☆

한 줄 평: 흰쌀밥처럼 아무 맛도 안 나는 듯하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오는 영화

 

  사람들은 다들 인상 깊은 영화나 드라마, 작품에 관해 이야기할 때 감정이 뭉클하거나 특별하게 재미있었던 작품들을 꼽는다. 하지만 인상 깊다'라는 말이 꼭 '깊은 감동'과 연결되어야하는지 의문이 들었고, 문득 넷플릭스에서 인상 깊게 봤던 가장 지루한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떠올랐다.

  이전에 뇌리에 강력하게 남아있던 이터널 선샤인어바웃 타임이라는 두 영화와 비포 선라이즈라는 영화와 제목도, 느낌도 비슷해 보였다. 새벽 감성에 잠이 들지 못할 때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늘 묵혀놨던 영화였다가, 어릴 적 묻어둔 타임머신을 꺼내듯 무언가 홀린 채로 이 영화를 찾아봤다.

  이 영화는 정말 지루하다.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는 영화 초반부 유럽을 여행하던 남자주인공이 기차에서 만나 잠깐 이야기한 여자 주인공에게 같이 내리자고 말하는 것이 전부다. 내려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결말까지 우리가 상상하는 그대로 흘러간다고 보면 된다. 사실 반대로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들다. 보다 보면 영화가 이렇게 잔잔하게 아무 일 없이 흘러갈 수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영화 내내 계속 서로의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도 영화가 싫지 않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고 감독의 새로운 시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기 영화처럼 매 순간이 짜릿하고 자극적이지 않다. 사랑한다는 것이 꼭 영화 같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대화 코드가 잘 맞는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 있듯이, 이 영화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한다. 대화도 결국 되짚어보면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듯,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정말 지루했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영화 속 주인공들에겐 그 순간의 즐거운 대화보다 짜릿하고 자극적인 사건이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장소가 계속 바뀐다. 주인공들이 충동적으로 빈에 내려 여행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이 영화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움직이고 대화하는 것을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냥 그들이 여행하는 것을 관객이 미행하는 느낌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둘이 다리를 걷다가 행인들에게 빈에 재밌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그 행인들이 배우였고 저녁에 자신들이 연기하는 연극을 보러 오라고 한다. 당연히 이게 사건의 시작 그런 느낌일 줄 알았는데, 주인공들은 그걸 까먹는다. 아침에 해가 뜨고 나서야 자신들이 까먹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더 영화를 영화 같지 않고 현실 같게 느껴지게 한다. 밤새 마음맞는 사람과 만나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대화를 하다 보면 연극 따위는 까먹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밖에 없는 둘이기에 둘 다 연극에 대해 기억하지만, 일부러 언급 안 하고 넘어간 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참 신기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분명히 지루하게 봤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곱씹을수록 재미있다. 뭔가 밍밍하지만 자꾸 생각나는 매력에 빠져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최예종(보과대 바이오의과학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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