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 교수
원자력공학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40여 일만에 탈원전 정책이 선언되었다. 고리1호기 영구정지식에서였다.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고리1호기가 40년간 안전한 운전을 마치고 퇴역하는 자리였다. 고리1호기와 함께 평생을 근무했던 한수원의 관계자를 치하하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의 피와 땀, 눈물과 노력, 인생이 함께했던 자리였다. 그 자리에 도열하여 탈원전이 선언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공약이라는 것이 탈원전선언의 이유였다. 하지만, 공약이 정책화되는 과정에선 행정부의 검토, 전문가의 자문, 공청회를 통한 의견수렴 등이 모두 생략되었다. 애당초 그런 과정을 거쳤다면 실행되기 어려운 정책이었다. 에너지 정책이라는 것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원자력발전이나 석탄발전 그리고 재생에너지발전과 같은 것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탈원전 정책은 수단이 정책의 목표가 되었다. 목적과 수단이 도치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한 독일, 스위스, 벨기에, 대만 이렇게 4개국 가운데 스위스와 벨기에는 전력수요가 우리나라 경상도 수준이고, 유럽의 통합된 전력망에 연결돼 부족한 전력을 공급받는다. 독일과 스위스는 각각 갈탄과 수력이라는 자국산 에너지가 있다. 하지만 대만,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는 믿을 데가 없다. 국토는 좁고, 인구는 많고, 자국산 에너지도 없다. 이런 나라가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선언하는 것은 자살행위인 셈이다. 그것이 독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모두 한걸음씩 물러서는 이유이다. 독일은 에너지 정책의 사례가 아니라 예외이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를 상기해 보자. 표본 추출된 2만명에 대한 최초 설문조사에서 신고리5·6호기 건설의 재개를 원하는 국민이 9%p 더 많았다. 원전비중과 관련해서도 현재 비중을 유지하거나 확대하자는 의견이 축소보다 4.8%p 더 많았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결과 건설재개59.5%가 지지하였다. 이것이 국민의견이었다. 그러나 정책당국자는 이를 외면하였다. 오히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에너지 정책에서 원전비중 축소를 권고하였다. 공론화가 신고리5·6호기 단 2개호기의 건설여부로 국한해야 한다는 총리령을 넘어선 것이다. 이 권고보고서가 제8차전력수급계획과 제3차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기초가 되어버렸다.

  지난 3년간 월성1호기를 조기폐쇄하고 신한울3·4호기 건설이 중지되면서 산업의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 신규원전 건설을 해야만 창원의 부품공장과 주요 건설사들의 일감이 생긴다. 두산중공업은 거의 파산상태가 되었고, 2000여개의 협력사, 원자력 주기기와 직접 관련된 800여개의 협력사가 어려움에 처했다.

  원자력 산업은 이른바 동반성장의 산업이다. 첫째, 현재 원자력 유관기관에서 원자력 전공자는 10%가 되지 않는다. 기계, 화공, 전기, 토목의 영역이 90%를 넘는다. 둘째, 원자력의 성장은 원자력 단독의 성장이 아니다. 창원의 중공업을 일으켰고 건설산업을 일으켰다. 셋째, 값싼 전력은 우리 산업경쟁력의 보배이다. 4차산업의 시대가 되고 전기자동차가 보급되면 값싼 전력은 더 필요해진다. 전력1킬로와트시(kWh)를 생산하는 단가가 60원에 불과한 원자력발전과 80원인 석탄발전을 폐지하고, 120원인 LNG(액화천연가스)200원인 태양광으로 채우면 값싼 전기는 물 건너간 것이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2034)부터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하는데 이게 환경부로부터 두 번 거부되었다. 에너지 전환과 재생에너지 공급은 온실가스를 저감이 명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온실가스가 저감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이라는 무탄소 전원을 30%나 빼버리고 그 자리를 LNG발전소로 채웠기 때문이다. 국토가 좁으니 숲을 깍아서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해야만 하고 태양광 자원마저 풍부하지 않으니 한계가 있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은 원자력이라는 과학을 위협하고 창원의 부품생태계를 괴멸시키고 건설산업을 어렵게 한다. 비싼 전기료는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고 기후깡패라는 오명마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게 탈원전 정책이 낳은 결과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