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이 나고 자란 경상북도 영양의 주실마을은 여느 농촌 마을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을 숲을 통과하고 시내를 건너야 했다. 도로 옆에 펼쳐진 숲은 제법 빽빽해 마을을 적당히 가렸다.

 

조지훈의 동상이 왼손엔 책을 쥐고 오른손은 높이 든 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조지훈의 동상이 왼손엔 책을 쥐고 오른손은 높이 든 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2008년 제9회 아름다운 마을 숲 대상을 받은 주실마을 숲은 명성에 걸맞게 포근했다. 숲 안에 놓인 평상에 앉아 가을 산책을 나온 몇몇이 이야기를 나눴다. 숲 한 편에는 1982년 조지훈의 문하생들이 세운 조지훈 시비가 있다. 가을 낙엽이 시비에 툭 떨어지며 하나둘 쌓이고 있었다.

 

지훈시공원의 나무 계단을 다라 조지훈의 시가 적힌 비석이 놓여있다.
활짝 핀 코스모스 뒤로 누렇게 익은 논과 지훈문학관이 보인다.

 

  마을에 들어가자 곳곳에 자리 잡은 한옥이 눈에 띄었다. 그중 한 건물에 자리잡은 지훈문학관에서는 시인의 유년 시절을 담은 사진과 어릴 적 읽고 배운 문학 작품을 볼 수 있다. 문학관 한쪽에는 시인이 친필로 작성한 주례사 등의 잡다한 문서가 있어 조지훈의 서체를 짐작케 했다. 여러 곳에서 받은 감사장, 위촉장, 표창장 등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헤드폰에서는 조지훈이 직접 낭송한 낙화코스모스가 흘러나왔다.

  마을 중앙에는 조지훈이 태어난 호은종택이 서 있었다. 주실마을에 처음 호은공 조전이 터를 잡을 때 마을 옆 매방산에 올라 매를 날려 앉은 자리에 집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경북 북부 지방의 일반적인 기와집 형식인 ㅁ자형을 한 호은종택은 그 모습이 웅장하면서도 과하지 않았다. 호은종택을 등지고 정면을 바라보면 붓 모양을 한 봉우리가 보인다. 문필봉으로, 풍수에 따르면 이 봉우리를 마주한 집에는 공부를 잘하는 학자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조지훈도 유년 시절 이 말을 들으며 붓을 잡고 공부했을까.

지훈시공원의 나무 계단을 다라 조지훈의 시가 적힌 비석이 놓여있다.
지훈시공원의 나무 계단을 다라 조지훈의 시가 적힌 비석이 놓여있다.

 

  호은종택을 지나 마을 뒤편 언덕에 오르자 지훈시공원이 나왔다. 조지훈의 시 중 엄선한 20개의 시가 차례대로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나무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르며 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아늑한 산세에 몸과 마음을 맡기게 된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마을을 찾은 사람들은 손을 맞잡고 마을 길을 걸었다. 해는 충분하게 천천히 졌고, 사람들은 양껏 흙을 밟고 양껏 단풍을 봤다. 코스모스는 누렇게 물든 논 옆에 흩뿌려져 있었다.

 

최낙준 기자 choigo@

사진박상곤 기자 oct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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