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선 불복할 가능성도

정상으로 돌아가고파 바이든 지지

차세대 좌파리더’ AOC 주목해야

  '자유주의 제국의 질서 속 평형은 이미 오래전에 깨졌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백인 인종의 헤게모니와 자신의 실리를 추구하는 트럼프는 이 해체기를 상징하고 촉진하는 카오스의 제왕이다. 트럼프는 자유주의 제국의 가식과 위선을 드러내는 정치의 조커다.’ 안병진 교수는 저서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조커에 비유했다.

  113,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지난 4년간 트럼프가 만들어낸 혼란과 무질서를 겪어온 미국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 안정을 희구하며 기존 질서를 회복하려는 바이든이라는 다크 나이트를 택할까. 그는 고담 시를 구할 수 있는 진정한 다크 나이트가 될 수 있을까. 해답을 얻고자 지난 1013일 미국 정치 전문가 안병진 교수를 찾았다.

 

  - 이번 미국 대선이 갖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남북전쟁 이후로 미국은 법치주의(rule of law)라는 안정된 규칙과 제도 속에서 경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미국이 그동안 꾸준히 견지해온 제도 자체를 파괴하려고 하는 트럼프와 이를 지키고자 하는 세력 간의 대결입니다. 단지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진보-보수 싸움이 아니에요. 그래서 바이든을 지지하는 공화당 분들도 있는 거죠. 미국이라는 공화국이 과연 유지되느냐 무너지느냐를 가르는 결정적 기로에 서 있는 셈입니다.

  국제적인 의미는 더 큽니다. 전 세계 기후학자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인류에게 한 10년 정도 남았다고 진단해요.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게 미국입니다. 미국이 안 움직이면 소용이 없잖아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한) 트럼프가 다시 당선된다면 이미 끝난 거고, (당선 시 파리협약 재가입을 약속한) 바이든이 된다면 일단 시도는 해볼 수 있는 거죠. 제 전공이 대통령제인데, 미국 대선에서 인류멸종 이야기를 하는 게 처음이에요. 미국 역사에 없던 대선이라는 겁니다.”

 

  안병진 교수는 바이든의 승리를 예측하면서도, 투표 이후 벌어질 일련의 일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화당은 90년대 중반부터 자신들에게 불리한 흑인과 히스패닉의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투표억압을 해왔습니다. 최근 중범죄자의 투표권을 제한해 논란이 된 플로리다주처럼요. 그 토대 위에서 트럼프가 우편투표를 걸고 넘어지니까 무시 못 할 위력이 생겼습니다. 우편투표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부정투표나 무효투표 가능성이 있거든요. 트럼프가 이를 핑계 삼아서 대선이 부정이라고 얘기할 소지가 있는 거죠.”

 

  - 선거결과를 보이콧할 가능성을 말씀하신 건가요

  “현재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많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트럼프가 계속 사기라고 공격하는 우편투표 대신 현장투표를 합니다. 현장투표 결과가 먼저 나오는 선거 당일 개표방송에는 트럼프가 이기고 있다고 나오겠죠? 그러면 트럼프는 최종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승리를 선언해버립니다. 이를 붉은 신기루(Red Mirage)’라 하는데, 이후 2~3일간 우편투표가 계속 개봉되면 최종 결과가 완전히 뒤집혀요. 그러면 전 지역에 공화당 변호사들을 보내 선거 불복 소송을 거는 겁니다. 이게 1단계예요. 2단계는 대법원까지 갑니다. 현재 대법원 구성이 이번에 지명된 배럿 판사까지 (보수) 6(진보)3이라 공화당에 유리하게 판결할 가능성이 높아요. (배럿 대법관은 인터뷰 이후인 1026일 인준됐다.) 3단계. 대법원이 바이든의 승리를 선언하면 끝날까요? 트럼프는 판사들이 민주당의 협박에 두려워서 잘못된 판결을 했다, 이렇게까지 나갈 수 있어요.

  하지만 두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우선, 조기 현장투표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가능성. 우편투표를 하면 온갖 핑계를 들면서 공화당이 무력화시킬 것 같으니까 민주당 지지자들이 코로나에 걸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어떻게든 투표장에 나가는 거죠. 이미 조기투표 참여율이 기록적으로 높습니다. 트럼프의 시나리오와 달리 현장투표에서도 바이든이 이긴다면 트럼프가 승리를 선언할 수 없는 거죠.

  다른 가능성은 만약 대법원 소송까지 가더라도 대법원 판사들이 어떤 결정을 할지 아무도 몰라요. 미국은 인티그리티(integrity)가 굉장히 발달한 나라입니다. 정파적으로 어느 진영에 가까운지와 무관하게 민주공화국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제도적 윤리가 철저해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강경 보수주의자지만, 트럼프를 당선시키기 위해 자신의 법률적 논리를 저버리는 판결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요. 실제로 진보적 의료보험 정책인 오바마케어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린 전적이 있습니다. 모든 가능성이 다 열려있어요.”

 

  - 트럼프와 바이든의 당선이 각각 한국에 미칠 영향이 무엇인가요

  “바이든이 되면 단기적으로는 불리할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반도 문제를 안정적으로 풀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바이든은 실용주의자고, 외교안보팀의 합리적 접근을 받아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겠죠. , 전제는 김정은이 인권 같은 민주당의 핵심가치를 일정 정도 수용하는 제스처 내지 전향적 행보를 보여줘야 합니다. 현재로서 민주당이 상원을 주도할 가능성이 큰 상황인데, 민주당 주도 상원과 바이든이 협력해 북한과 패키지딜을 성사시키는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있죠.

  트럼프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바이든보다 남북관계를 풀기에는 더 좋습니다. 트럼프 집권 2기의 핵심 목표가 노벨평화상이거든요. 하지만, 그때그때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수시로 입장을 바꾸는 트럼프의 즉흥적인 변덕을 봤을 땐 안정적으로 중장기적 미래를 만들어가기엔 어려워요. 북한과의 협상이 중간에 좌초될 가능성도 있고요. 민주당이 주도하는 상원과 100% 협력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 바이든이 초반 약세를 극복하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민주당의 주된 정서가 일단 트럼프를 꺾고 정상상태를 회복해야 한다예요. 극단적 세력을 꺾으려면 광범위한 연합이 필요합니다. 과거 프랑스에서 르펜이라는 극우 정치인이 대선에 나왔을 때 좌파들이 눈물을 머금고 확장성 있는 후보를 뽑았어요. 일단 파시스트가 대통령이 되는 건 막아야 하니까요. 샌더스가 속한 진영이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유연하지 못했던 측면도 있어요.

  바이든이 샌더스를 꺾었던 또 다른 핵심 요인은 민주당의 집토끼인 흑인들이 샌더스 손을 들어주지 않은 겁니다. 경제적으로나 인종적으로도 가장 처절하게 억압받는 계층이잖아요. 당장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은 급진적인 후보보다는 당장 조금이라도 사회를 진전시키는 후보를 택하기 마련이에요. 흑인들이 샌더스에게 기대하기보다는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을 통해 오바마 시대를 복원하고 싶었던 겁니다.”

 

  - 트럼프와 바이든을 비롯해 힐러리, 샌더스, 워런 등 그동안의 대선 주자들이 40년대생 70대 정치인들로 고령화되면서,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 고령자 지배체제)가 심화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동의해요. 연륜과 지혜를 중시하는 상원은 그렇다 하더라도, 민심의 반응성을 중시해야 하는 하원에도 20·30대 의원은 소수입니다. 사실 비극이죠. 바이든은 훌륭한 사람이지만, 20세기 근대 미국에서, 뉴딜 시대의 유산 속에서 살아온 인물입니다. 지금 21세기 문명의 전환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의 패러다임이에요. 그런 점에서는 전 바이든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봅니다.”

 

  - 오바마와 달리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젊은 후보들이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오바마는 몇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예외입니다. 젊은 나이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대정신을 이해하고 대통령다운 능력과 품위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에요. 21세기 대통령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인 퍼포먼스 능력도 뛰어나고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한) 피트 부티지지나 앤드류 양의 부진은 이들이 가지는 능력의 한계죠. 트럼프가 워낙 급진적이니까 아무래도 젊은 사람보다는 안정적인 사람을 뽑자는 심리가 작용한 탓도 있고요.”

 

  - 교수님은 미국 진보/좌파의 상징으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아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 하원의원을 꼽으셨습니다. AOC가 이민정책을 놓고 민주당 지도부와 충돌할 정도로 너무 급진적이라거나 말만 앞선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AOC21세기의 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걸 오바마처럼 너무나도 뛰어난 내러티브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건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타고나야 해요. 포용력도 있더라고요. 하원의원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연합했던 게 공화당의 강경보수 세력이었어요. 그게 진보입니다. AOC는 그걸 두루 갖췄어요. 물론 아직은 사회주의에 관해 다소 거친 측면이 있어요. 그거야 젊었을 때 누구나 그러니까. 저는 2024년 대선에 AOC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안 되면 2028년 대선이라도. AOC 같은 사람의 시대가 빨리 와야 해요.”

 

안병진 교수는 "AOC는 21세기의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오바마처럼 뛰어난 내러티브로 표현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89년생(31)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뉴욕 하원의원은 미국 역사상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이다. “The Dow soars, wages don’t(주가는 치솟는다. 월급은 그렇지 않다).” “No one ever makes a billion dollars. You take a billion dollars(벌어서 억만장자가 된 사람은 없다. 그건 약탈로만 가능하다).” ‘민주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선명한 진보적 색채를 감각적인 언어로 구사해 주목을 받고 있다.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없애고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자는 그린뉴딜을 제안하면서, 재원 마련을 위해 초고소득자에게 최고 70%의 소득세율을 부과하자고 주장해 기후 변화와 부유세 논쟁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은 중도성향의 백인 중산층 유권자인데 AOC가 폭넓은 당내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아직은 어렵죠. 하지만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서 청년세대가 인구학적으로 훨씬 유리해요. 자본주의의 번영만 본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세대거든요. 사회주의? 그게 왜 나쁜데? 그래서 샌더스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거죠. 미국에서 시간은 청년의 편입니다. 이르면 2024년 대선부터, 적어도 2028년 대선에는 완전히 주류가 돼요. AOC가 설령 실패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또 다른 AOC가 나오게 되면 미국은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조민호 취재부장 domino@

사진양태은 기자 aur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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